공짜 점심은 없다 – 영화 <돈> 🎞

글, 우지우

한 번의 클릭 실수로 4,000만 원을 날린 일현(류준열 분)이 은밀한 제안을 받은 장면으로 마무리된 지난 주 ‘돈구석 1열’, 기억하고 계시는가요? 오늘은 그날 이후, 어지러운 증시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착오거래 사고를 치고 난 후, 기가 죽어 있던 일현. 빌딩 옥상에서 의문의 남자를 만납니다. 남자의 이름은 번호표(유지태 분). 그는 일현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곧 있을 트리플 위칭 데이에 
스프레드 주문 15,000개가 나올 겁니다. 
그중 8,000개를 잡으십시오. 
그렇다면 일현 씨에게는 7억 원 정도의 수익을 약속하죠”

한 번에 4,000만 원을 잃은 후, 심적으로 무너져 있던 일현에게 ‘7억 원의 수익’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달콤합니다. 하지만 큰돈인 만큼 겁도 나는 게 당연지사.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a thing as free lunch)

세계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격언도 머릿속에서 맴돌죠. 어떤 것이든 반드시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니까요. 

과연 일현은 이 의문의 남자의 지시를 수행했을까요? 그런데 잠깐, 수락하기 위해선 우선 의문의 남자가 한 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텐데… 대체 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세 마녀가 뛰노는 날, 
스프레드 주문 계약

번호표는 일현에게 스프레드 주문 8,000개를 매수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처음부터 모르는 단어가 등장했죠. 스프레드 주문이란 뭘까요? ‘스프레드’라는 단어는 넓이, 전파, 보급, 펼침, 차액과 같이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요. 거래에서 스프레드는 ‘차액’의 의미에 가장 가깝습니다. 스프레드도 예금, 적금처럼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주문에는 상품을 사는 주문(매수)과 파는 주문(매도)이 있습니다. 이 기본적인 주문들은 한 번 선택하고 나면 선택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죠. 매수한 경우에는 내가 산 금액보다 자산의 가격이 내려갈 위험, 매도한 경우에는 내가 팔고 난 이후 자산의 가격이 오를 위험이 있습니다. 

스프레드 주문은 이 둘을 동시에 취하는 주문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의 일종인 선물 투자에서 많이 사용되는데요. 만기나 종류가 다른 두 가지 선물을 동시에 매매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 선물 계약 중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선물을 매도하고, 저평가된 선물을 매입하죠. 고평가된 것을 팔고 저평가된 것을 샀으니 차액이 커지겠죠? 

금융 교과서에 따르면 선물 스프레드의 가격 변동은 크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이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왜 이 의문의 남자 번호표는 안정적이라 하는 스프레드 주문을, 증권사 브로커에게, 굳이 은밀하게 제안했을까요? 

번호표는 안정적이라고 불리는 스프레드의 가격이 뒤틀릴 때를 틈타, 시장에 큰 변동을 일으키는 시세 조종 범죄를 노린 겁니다. 일현이 아닌 다른 금융사 직원을 매수해 실수인 척 스프레드를 시장에 싼값에 대량으로 뿌리고, 그 주문을 일현에게 매수하도록 한 거죠. 

일반적으로 금융회사들은 충동적인 구매를 싫어합니다. 스프레드를 시장에 싼값에 풀어버린 직원의 금융사는 그 주문을 모조리 다시 원상복구 하도록 했고, 일현의 주문을 통해 스프레드를 가진 작전 세력은 스프레드를 다시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챙긴 거죠. 중고장터에 싸게 올라온 물건을 재빠르게 사서 다시 비싸게 파는 것과 같은 원리에요.

쿼드러플 위칭 데이
3, 6, 9, 12월 둘째 주 목요일!

이렇게 요란한 작전을 실행하려면, 조용한 날보다는 원체 시끄러운 날에 시행하는 것이 좋겠죠? 시장 변동성이 심하므로 작전을 해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고, 거래한 파생상품을 바로 청산해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번호표가 선택한 날이 트리플 위칭 데이입니다. 트리플 위칭 데이는 금융시장의 세 가지의 파생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날입니다. 3, 6, 9, 12월 둘째 주 목요일인데요. 이 주기마다 파생상품 만기가 재설정되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이 커집니다. 

위칭 데이는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것 마냥 증시가 어지러워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2008년, 개별주식 선물이 상장된 이후에는 네 가지 만기가 동시에 겹치게 돼 지금은 쿼드러플(quadruple) 위칭 데이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지난 6월, 2,200선 돌파를 앞두고 있던 코스피 지수가 오후에 1%가 넘게 떨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파생상품 투자를 많이 하는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의 행동이 두드러지는 날이었거든요. 회사별로 거래량이 몇천억 원 규모에 이르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는 특히 주의해야 하는 날입니다. 휩쓸릴 위험이 있거든요.

시장교란 행위이자
도덕적 해이

영화로 돌아와 보죠. 번호표가 미리 매수해둔 다른 증권사의 직원이 고의로 15,000개의 계약을 시장에 흘려보냅니다. 과연 일현은 주어진 첫 임무를 잘 마쳤을까요? 그리고 그 의문의 남자인 번호표의 정체는 뭘까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설명했으니, 이제 영화가 다시 보이실 거예요. 

영화 <돈>은 금융학을 배운 사람의 관점에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시장교란 행위임을 알면서도 도와준 주인공의 도덕적 해이를 마냥 응원하기는 힘들었거든요. 여러분도 관객의 입장, 그리고 투자자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두 번 보고나면 색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다음 주에는 조진웅, 이하늬 주연의 <블랙머니>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사모펀드, 기업사냥꾼 같은 말들이 많이 보이시죠? 바로 그 내용입니다. 영화를 미리 봐도 좋고, 나중에 봐도 좋은 ‘돈구석 1열’. 다음 주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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