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손도 걱정없는 생활 수리 기술 배우기! 고장났다면, 고쳐서 다시 써봐요

글, 어피티


열심히 쓰던 전기포트가 망가졌을 때, 우리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어요. 고치거나, 새로 사거나. 그런데 막상 A/S를 알아보니 무상 수리 기간은 끝났고, 수리 비용은 새 제품 값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몇 해 전, 유럽의 한 소도시에 방문했다가 한 제로웨이스트 샵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가장 눈에 띈 건, 매장 한편에 마련된 수리 공간이었어요.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수리 카페(Repair Cafe)’처럼 동네 사람 누구나 고장난 물건을 들고 와 고칠 수 있도록 도구와 재료를 갖춰 놓고, 가끔은 수리 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도 연다고 했죠.

ⓒ어피티, 수리하는 삶을 권장하는 제로웨이스트 공동체


“충분히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을 그냥 버리는 건, 환경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 한마디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엄마께 큰맘 먹고 선물한 고급 양산을 우산살이 하나 부러졌다고 새로 사버리고, 벽걸이 시계도 바닥에 떨어져 추가 망가지자 바로 버렸던 일이 생각났거든요. 생각해 보면 고치는 게 어렵다기보단, 귀찮고 시간이 아까워서였어요.


텀블러 들고 다니고,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플라스틱 줄인다고 나름 친환경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고쳐 쓸 수 있는 물건 하나 귀찮다고 외면한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럽더라고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리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피티, 플러그  일체형 믹서기의 고장난 부분만 교체한 모습


너무 아깝더라고요. 겉보기엔 멀쩡한데, 딱 그 한 부분만 고장 났을 뿐인 물건을 버려야 한다는 게. 내 지갑에게도 미안하고, 지구에게도 미안한 일이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나도 고쳐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유럽에서 봤던 수리카페처럼, 해외에는 이미 일상적으로 고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나라에도 수리를 위한 공간이 있었답니다. 이름하여, 수리상점 곰손!


다가오는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망원동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의 ‘수리 워크샵’에 고영 PD가 직접 다녀왔답니다!

소비자에게는 물건을 고쳐 쓸 권리, ‘수리할 권리’가 있다


망원동 시장 골목 사이, 조금은 조용한 어느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


수리상점 곰손은 전파사도 아니고,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전문 강사가 있는 곳도 아니에요. 수리에 관심 있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 기술을 스스로 익히는 곳이죠. 운영진 6명 모두 본업이 따로 있고, 이 공간은 일주일 중 단 4일(목,금,토,일)만 문을 연다고 해요.


운영진 분들은 원래 망원동의 ‘알맹상점’이라는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활동하던 분들이었어요. 새벽에 모여 책을 읽는 ‘모닝 미라클’ 모임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한 책에서 ‘리페어 컬처’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고 해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국립독일박물관 관장인 저자가 개인적 관심으로 ‘수리문화’와 ‘수리권(Right to Repair)’에 대해 엮은 책이었는데요. 다들 읽고 이런 생각을 하셨대요.


“맞아, 우리나라는 수리하기가 너무 힘든 시스템이야. 조금만 고치면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인데, 그냥 다 버리게 되어 있잖아.”

ⓒ어피티, 곰손이어도 괜찮아! 수리상점 곰손


그래서 시작한 게 곰손이에요. 처음엔 작은 실험처럼 열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고 해요. 이곳을 간혹 고장난 물건을 고쳐주는 전파상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수리상점 곰손의 정체성은 ‘스스로 고치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고 해요.


곰손이라는 이름도 참 귀엽죠. 금손이 아니라 곰손. 속도가 느려도 괜찮고, 잘 못해도 괜찮고, 서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에 이곳은 잘 고치려고 오는 게 아니라, 처음 고쳐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요.


이날 수리 워크샵을 진행해 주신 강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고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집수리 아카데미도 가보고, 전기기능사 교육도 들어봤지만, 거기선 바로 전기 배선처럼 아주 어려운 개념부터 가르쳐줬대요. 우리는 사실 그런 고급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고장 났을 때 간단하게, 직접 고쳐 쓸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생활 밀착형으로 꼭 필요한 내용만 알려주기로 결심하셨대요.

간단한 수리인데도 방법을 몰라서 불편을 감수하거나, 반대로 출장 수리에 너무 큰돈이 들기도 하고, 막상 기사님도 보시고는 “이거 그냥 건전지만 갈면 돼요.” 하면서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이 있지 않았냐며 말씀해 주시는데 너무 공감됐어요.

ⓒ어피티, 수리된 우산 모습


곰손에서는 지금 ‘우산 수리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버려진 우산을 수리해 ‘리페어 우산’으로 되살리고, 판매도 하더라고요. 버려지는 물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계획적 진부화’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계획적 진부화란, 제품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소비자가 일정 기간 후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기업들의 전략이에요. 아이폰 배터리 얘기를 하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예전엔 배터리 탈부착이 되니까 고장 나도 그냥 갈면 됐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구조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고치기보다 2~3년 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새로 사게끔 유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한 ‘아이폰 수리 워크샵’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요. 배터리를 자가 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데 실습용 핸드폰으로 직접 아이폰을 분해하고 조립해 볼 수 있다고 해요.

ⓒ어피티, 전기워크숍 현장


이날, 고영 PD가 참석한 것은 ‘전기 워크숍’이었어요. 워크숍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선의 종류부터 배웠고, 직접 전선 피복을 벗겨보고, 콘센트, 스위치, 플러그를 갈아 끼우는 작업도 해봤어요.

ⓒ어피티, (좌)전기워크숍 현장 (우) 고영 PD 작품


그동안 집 안에 누렇게 변색된 오래된 콘센트나 스위치를 보면 지저분해 보여서 불만이었는데, 이번 워크숍에서 배운 기술로 직접 새 걸로 교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플러그가 고장 나서 통째로 버려야 했던 일체형 가전제품들, 특히 해외 직구로 산 110V 플러그형 제품들도 이제는 내가 직접 원하는 플러그로 갈아 끼울 수 있게 되었죠.


게다가 작업을 마친 후, 강사님이 깔끔하게 너무 잘 했다고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잔뜩 해주셔서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어뒀어요. 혹시 나중에 고영 PD가 실종되면 전기 작업자로 진로를 바꾼 걸로 알아주세요. (물론 농담입니다, 헤헤)


막상 해 보니, 너무 쉽고 간단하더라고요. 그동안 괜히 전기 작업은 어렵고 위험하다는 선입견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것조차 못 하고 있었던 게 손해처럼 느껴졌어요. 다음 전기 워크숍에서는 전등 교체와 관련된 내용을 알려주신다고 해서, 벌써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답니다.

ⓒ어피티, 멀티탭에 적힌 문구


수업 말미엔 전선에 적힌 정보를 읽는 방법도 알려주셔서 무척 유익했어요. 멀티탭 전선에 숫자랑 알파벳이 촘촘하게 적혀 있는 거, 보신 적 있나요? 지금껏 멀티탭 살 때 콘센트 개수랑 길이만 보고, 쿠팡이나 다이소에서 제일 저렴한 걸 골라왔거든요. 그런데 전기용품 중 가장 쉽게 과부하 위험에 노출되는 게 바로 멀티탭이래요. 


멀티탭을 안전하게 오래 쓰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정보는 딱 두 가지예요. 바로 정격용량(W)과 전선의 굵기(mm²)인데요. 예를 들어, 어떤 멀티탭에 정격 16A 250V 라고 쓰여 있다면, 이건 16 × 250 = 4000W까지 견딜 수 있는 멀티탭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이 수치는 말 그대로 ‘최대치’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체 용량의 70~80% 수준까지만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해요. 즉, 4000W 멀티탭이면 2800~3200W 수준까지만 사용하는 걸 권장해요.


그리고 멀티탭 전선에 3C x 1.5㎟라고 적혀있는데 3가닥 전선(3C), 각 전선의 단면적이 1.5 제곱밀리미터라는 뜻이에요. 정격 16A 250V 이상의 멀티탭을 쓴다면, 전선도 반드시 1.5㎟ 이상이어야 한대요. 

ⓒ어피티, 수리 후 판매 중인 물건들


수리상점 곰이 문을 여는 데 큰 영향을 준 개념인 ‘수리권’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 이후에도 그 제품을 직접 수리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수리받을 권리를 말해요.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필요하게 새 제품을 사야 하고, 고칠 수 있는 물건들이 죄다 전자 폐기물이 되어버리죠.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수리권을 보장하기 위한 흐름이 빠르게 진행 중이에요. EU는 2024년부터 소비자 수리권(R2R)이 공식적으로 발효되었고, 프랑스는 2021년부터 제품마다 ‘수리 가능성 지수’를 표시하게 했어요. 미국 일부 주에서는 ‘수리권 법안’이 통과됐답니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요. 일부 기업들이 자가수리 매뉴얼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도화보다는, 기업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진 수준이라고 해요. 제품을 쉽게 고칠 수 있게 설계하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고칠 수 있는 환경이 빨리 마련되기를 바라요.


수리상점 곰손에서 고친 건, 어쩌면 물건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무언가 망가졌을 때, ‘고쳐 쓸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니 훨씬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었어요. 내 마음과 태도를 고치고 나니 앞으로는 ‘버릴까?’보다는 ‘고칠 수 있을까?’를 먼저 질문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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