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돌아보고,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 알아봤어요. 일본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번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일본은 지난 30년간 부단히 애를 썼고, 최근에야 비로소 그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금리를 크게 낮춰줬다고요?
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중앙은행은 부채 디플레이션의 공포를 몸소 느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이에 대응하고자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추었죠. 보통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들이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 설비 투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고용이 창출되면서 불황에서 탈출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과 가계는 이미 빚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자와 원금 상환에 여념이 없었죠. 금리가 낮아져도 돈을 빌려 투자를 늘리거나 소비를 늘리기는커녕 월급 대부분을 대출을 갚는 데 쓰니, 실물 경제의 성장은 점점 더 위축되기 시작했어요.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한계를 보이자, 이번에는 일본 정부까지 나서게 되었습니다.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경기 대응에 나선 거예요. 각종 건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이는 일시적으로는 경기를 자극하는 효과는 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정 기간 경기 방어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추가적인 재정 지출이 한계에 봉착하자 되려 일본 정부만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일본 경제는 다시금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죠. 일본 정부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약 250%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해당합니다. 경기 방어 차원에서 진행된 적극적 재정 집행이 낳은 상흔이라고 할 수 있죠.
2000년대엔 사정이 나아지기도 했다던데요
2000년 들어서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돈 풀기 노력과 함께 바다 건너 미국의 닷컴 버블로 인한 투자 과잉이 만나게 되면서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하야미 당시 일본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게 되는데, 이게 큰 실수였죠. 회복세를 보이던 일본 경제는 다시금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다시 한번 경기 부양의 고삐를 당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있었죠. 제로금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일본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2001년, 일본은행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양적완화’에 나서게 됩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나서서 시장에 직접 통화를 공급하며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이에요. 속된 말로 ‘돈을 찍어낸다’라고도 해요.
일본은행은 금리가 제로로 내려가서 더 이상 낮출 금리가 없던 상황에서,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서 엔화를 시중에 공급했어요. 여기에 더해 각종 부실 금융 기관을 퇴출하는 등 빌린 돈을 제대로 회수하고 있지 못한 불건전 채권을 제거했어요. 또한 그때까지 ‘일본 최고의 금융기관’이었던 우정국 민영화를 비롯해 사회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며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게 됩니다.
하지만 금세 다시 금리를 올리기 일쑤였다고요
2000년 이후 개혁정책에 힘입어, 2005~2006년 일본 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어요. 그러자 일본은행은 2006년 초 적극적으로 진행했던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게 됩니다.
2006년 4월과 2007년 2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경기가 과열로 치닫는 것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보였는데요, 이는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와 만나면서 큰 실수로 판명되죠.
금융 위기의 파고에 휩쓸려 다시금 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끌어올리고자, 일본은행은 다시금 기존처럼 제로 금리와 함께 양적완화에 나서게 됩니다.
경기부양책이 약효를 잃었을 것 같아요
돈을 풀어왔던 기간도 워낙 길었고, 약간 개선되는 듯하면 돈 풀기를 중단하는 실수를 반복해서인지, 이번에는 돈 풀기 경기 부양에 일본 경제가 반응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거죠. GDP의 0.5%나 되는 천문학적 피해액을 발생시킨 자연재해를 겪으며 일본 경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이런 경제 부진을 극복하고자 12년 하반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 총리입니다. 아베 신조는 ‘세 개의 화살’로 일컬어지는 아베노믹스를 선언했어요.
화살 한 개는 부러지기 쉽지만 화살 세 개를 한 번에 꺾으려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과거 제로금리를 비롯한 양적완화라는 하나의 화살만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아베 총리 정부는 과감한 재정 지출, 발 빠른 구조조정이라는 다른 두 개의 화살을 함께 꺼내 들며 일본 경제 개혁의 시위를 보다 강하게 당겼어요.
과거 연방준비위원회(미국의 중앙은행) 의장이자 공황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의 강한 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베노믹스는 그런 버냉키의 조언을 그대로 따랐죠.
이후 그 유명한 ‘무제한 양적완화’가 등장한 거군요
아베 총리는 단순히 양적완화를 시행한 것이 아니라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1조 엔을 풀겠다’라고 얘기했던 것이 기존의 양적완화였다면, ‘일본의 물가가 2%로 올라오는 그날까지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라고 천명한 것이 아베노믹스하의 무제한 양적완화예요.
이렇게 되면 경제 주체는 물가가 조금 올라온다고 조기에 금리를 인상해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죠. 실물 경제 및 금융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준 셈입니다. 또한 명확한 목표가 제시된 만큼 이번의 부양책은 과거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는 신뢰 역시 함께 주었어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2012년 상반기에 8000엔 수준으로 바닥을 기고 있던 일본 주식 시장은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런 아베노믹스의 누적적인 효과에 힘입어 2024년 초, 드디어 일본 증시는 89년의 전고점인 38000선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30여 년 만에 전고점을 탈환한 일본 증시”라는 보도를 냈죠.
부작용도 없지 않았겠네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경기 부양과 2%로 물가가 오르는 그날까지 돈을 풀겠다는 강한 의지가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일본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엔화를 과감히 풀자 엔화가 빠른 약세를 보이면서, 아베노믹스가 시작될 당시 1달러당 75엔 수준이었던 엔화 환율이 최근에는 160엔 수준까지 올랐죠. 원화로 따지면 1달러에 1,000원이었던 것이 2,300~2,400원까지 환율이 뛴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죠. 그리고 엔 약세로 수출이 크게 개선되면서 일본 증시 역시 강한 자극을 받게 됩니다. 디플레이션과 불황, 그리고 부채로 인한 자산 시장 붕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일본 경제는 이런 긴 과정을 통해 30여 년 만에 부활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한 만큼 그 부작용 또한 있습니다. 일본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죠. 지금 일본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다시금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40년 만에 부활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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