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어요. ‘개인정보보호 인증’과 ‘실명거래 인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등장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서 영업해온 암호화폐 거래소를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과정에서 등장한 키워드인데요. 그동안 얼마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허술하게 운영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가 암호화폐 업계에서 일할 때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 EP.24 – 암호화폐, 특금법을 만나다
코인 상장하려다
서버 다운된 이야기
제가 일하던 회사도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코인을 상장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일했던 회사에서 메이저 거래소의 비싼 상장 수수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중소거래소 중 한 군데를 선택해 상장을 진행했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코인을 상장하고 거래가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서버가 다운되고 만 거예요.
결국 서버를 롤백하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미 투자자의 신뢰는 무너진 이후였습니다. 여러 차례 회사에서는 코인을 사들이고 소각했지만, 코인 가격은 제가 퇴사하는 순간까지 상장 당시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비롯해 금융거래에는 서버가 다운될 때 등의 문제를 대비한 여러 백업 수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금융회사나 거래소 모두 정전에 대비한 비상발전기나 주요 서버의 내용을 복제한 백업 서버 등 혹시 모를 사태를 2중, 3중으로 대비하고 있어요.
이건 금융회사나 거래소 자체의 노력도 있지만,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시장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규제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현실 금융에서 법과 규제가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관리감독 기관의 규제가 있기에 금융회사는 이를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안심하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어요.
암호화폐는 회색지대?
암호화폐는 달랐습니다. 그동안 법과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거래가 이루어졌어요.
물론 어떤 사람은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계기 자체가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법과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금융 거래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니, 현실에서의 법과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거래가 ‘현실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개인 간 거래가 아니라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라면, 당연히 법과 규제의 적용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기를 비롯한 각종 범죄로부터 시장 참여자를 보호할 수 있거든요.
암호화폐 버블
그리고 특금법
암호화폐 버블이 발생한 2017년 하반기부터 금융실명제를 암호화폐 시장에도 적용한 2020년 1월까지, 금융 당국은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고 암호화폐 시장을 지켜만 봤습니다.
그 결과는 수많은 거래소의 난립, 그리고 ‘스캠’이라 불리는 사기성 암호화폐 프로젝트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해였죠. 우리가 앞서 살펴본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결과예요.
🗞 EP.15 –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무엇이 다를까?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떤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좋은 프로젝트인지, 어떤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스캠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래소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투자자는 ‘그럴듯한’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되겠죠?
문제는 ‘그럴듯함’의 진위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에요. 그 프로젝트가 진짜 좋은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 그대로 ‘레몬’인지 알 수 없었던 거예요.
정보비대칭 상황 속에서 결국 ‘역선택’ 문제가 발생하고, 암호화폐 업계 자체가 침체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과 규제가 필요해요. 지금에서야 적용된 암호화폐 특금법은 시기상 늦은 감이 있죠.
특금법 다음,
독점거래소 논란?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가 경쟁하던 시장에서 ‘빅4’라고 불리는 거래소만 주류로 남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원화로 암호화폐를 거래하려면 4개의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됐거든요.
빅4 거래소가 압도적인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한 셈인데요. 이런 구조에서 거래소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이슈가 된 ‘잡코인 상장 및 작전’이 대표적이에요.
빅4 암호화폐 거래소에 신규 프로젝트를 상장한 후, 작전세력을 이용해 코인 가격을 급격하게 오르내려 개인 투자자는 손실을 보고 작전 세력은 이익을 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작전 세력은 시장을 교란시킨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아직 이 정도로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전세력의 범죄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없고, 거래소에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금법 적용에서 더 나아가 금융시장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암호화폐 거래소 역시 금융감독원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2주에 걸쳐 암호화폐 거래와 연결된 규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다음 주에 새로운 주제로 다시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