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자 유산 답사기>는 다음 주까지 두 편에 걸쳐, 대표적인 원자재인 원유 투자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투자 경험담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원유 투자의 역사를 알아보고, 원유 가격(유가)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원유 투자에 대해 더 이해하기 쉽거든요!
원유 가격이
요동친 이유
원유는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오르거나 떨어진 역사가 많았습니다. 1850년대에 원유가 개발된 이래로 ‘현재 가격’이 ‘평균 가격’보다 낮았던 시기가 더 많았으니까요. 석유정치학의 대가인 대니얼 예긴이 ‘석유(석유는 원유보다 큰 개념)는 인기 있는 투기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유 가격(유가)이 요동친 데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 원유를 생산하는 곳이 점점 많아진 것
• 외부적인 이유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
•
셰일가스 등 원유를 대체하는 산업이 성장한 것
시간 순서대로, 유가에 영향을 준 큼직한 이슈들만 짚어볼게요.
원유는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되고 산업화된, 가장 미국적인 상품이었습니다. 그러다 1910년대에 ‘반독점법’이 만들어지며 시장의 독점을 제한하죠. 그즈음 이란 지역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중동 석유 시장이 시작됐어요.
원유 생산지가 개발되면서 원유 공급량 역시 늘어났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가죠.
공급량 증가로 반 토막 났던 유가는
1910년 후반, 다시 두 배로 오릅니다. 이때는 헨리 포드(Henry Ford)가
컨베이어 시스템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하면서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에요. 자동차 연료로 원유 수요가 높아지고, 1차 세계대전으로 원유 공급은 불안정해졌습니다. 공급이 불안정한데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가죠.
이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수요가 주는 동시에 여러 유전의 개발로 유가는 다시 떨어집니다. 이렇게 초기 원유 시장은 수요공급에 따라 단기적인 가격이 결정되는 가운데, 큰 흐름에서는 생산지가 늘어나며 가격이 내려가던 상황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원유 투자시장의 초기의 모습이었다면, 이후로는 양상이 좀 달라집니다. 원유 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국가나 조직에서 공급량을 조절하기 시작했거든요.
공급량은
우리가 결정한다?
1939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이후, 1947년 미국 석유 기업들이 함께 아람코를 세웠어요. 1950~60년대 아랍 국가들이 각국의 유전을 국유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196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중동의 주요 산유국이 OPEC(석유 수출국 기구)을 설립하면서 구도가 달라지기 시작해요. 아람코를 포함해 중동에서 생산된 원유로 서부에 진출한 석유회사에 대한 지분을 1972년, OPEC이 일부 가져오게 된 거예요.
이후 1980~1990년대까지 OPEC은 유가를 크게 인상합니다. 유가 파동에 대한 여러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지만 그 내용은 넘어갈게요.
2004~2005년에는 유가가 계속 올라 74불까지 다다릅니다. 이때 중국, 인도, 동남아 등 신흥국들이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엄청났지만 석유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더 늘리지 않고 고정시켜 가격 상승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가격이 상승할수록 이익을 보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2014년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던 유가는, 2015년 배럴당 37불까지 급락합니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원유 시장이 위협을 받자, OPEC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생산량을 확 늘려버린 거예요.
단기간 유가가 낮아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점유율을 다시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이후 2018년까지 다시 OPEC에서 생산량을 줄이면서 유가는 회복하게 됩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역대급 폭락
올해 4월, 서부 텍사스유의 5월물 선물 가격이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합니다. 미래(5월)에 도착할 원유의 가격이 4월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는 뜻인데요. 원유의 가격이 낮아지다 못해, 판매자가 원유를 구매한 사람에게 웃돈을 주고서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월 초,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공장 등에서 필요한 원유의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한 게 그 이유였습니다. 수요는 크게 떨어졌는데 공급량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수요와 공급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발생한 거예요.
원유가 남아돌아 재고를 처리할 창고마저 부족한 상황이 됐지만, 산유국들은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OPEC+(OPEC과 OPEC에 가입하지 않은 산유국 모임)가 생산량을 줄이는 감산 합의를 하려다 실패했어요. 감산은커녕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생산량을 늘려버렸고, 나머지 나라들도 이에 질세라 생산량을 늘리며 힘겨루기를 한 거예요.
어떤 경우든 원유 가격이 너무 내려가면 큰일이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산유국이 원유 생산을 줄이면 그 틈을 타 미국의 셰일오일이 인기가 높아질까봐 걱정했어요. 가격을 낮춰서라도 셰일오일 대신 원유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춰버린 거예요. 이후 조금씩 감산 합의를 하며 유가는 다시 플러스로 회복됐지만, 원유 시장에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일단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세계 경제가 전처럼 회복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또 각국의 힘겨루기가 언제 끝날지도 미지수입니다. 그 밖에는 새로운 유전이 점점 많아지고, 예전에는 효율이 낮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았던 셰일가스, 태양열, 원자력 등 대체 에너지가 원유시장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고요.
유가는 이렇게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도 움직이지만, ‘원유 생산이 곧 권력’이기 때문에 국제 정치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에너지 산업이 큰 틀에서 변화해가는 것도 영향을 미치죠. 현재 유가를 숫자만 갖고 보면 어떤 내용인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짚어보면 상식적인 선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내가 원유 투자를
시작한 이유
저도 원자재에 대해 잘 몰랐다가, 원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가격의 움직임을 보다가 이 정도의 가격이면 살만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소액으로 첫 투자를 시작했답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제가 투자한 가격보다 크게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위에 알려드린 코로나19의 상황이 저에게도 타격을 준 거예요. 사실 10불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을 때 그때 추가로 투자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단 장기적으로는 오른다는 생각으로 관망 중이에요.
다음 주에는 제가 투자한 ‘원유
ETF’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제 투자 경험담을 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아직까지는 본전도 못 찾고 마이너스 상태지만, 원유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생생한 후기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