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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 오늘은 마케터로 일하는 30대 직장인 ‘사연자 N’ 님의 사연을 전합니다. 사연자N 님은 전셋값이 고공행진 하던 2020년 10월, 직장과 가까운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불과 2년 3개월여 전이지만, 전셋값이 끝을 모르고 뛰던 때였습니다.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분위기와 사뭇 다르죠.
유난히 마음에 들던 전셋집
전세난이 한창이었던 시기라, 사연자N 님은 급하게 전셋집을 계약했습니다. 크기도,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은 집이었어요. 게다가 전셋집엔 사연자N 님 마음에 쏙 드는 부분이 두 가지나 있었습니다.
첫째, 이 집을 소개한 공인중개사가 ‘법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연자N 님은 “집도 마음에 들었고, 공인중개법인 소속의 전문성 있어 보이는 직원이 나와서 신뢰가 갔다”고 말했어요.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건물주’와 직접 계약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건물주와 전세 계약을 하니 전세금을 떼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연자N 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두 번이나 바뀐 임대인
건물주와의 계약 이후 사연자N 님의 임대인은 두 번 바뀌었어요. 사실 사연자N 님의 전셋집은 당시 비일비재하던 ‘무자본 갭투자’의 전형적인 표본이었습니다.
무자본 갭투자는 매매가보다 전세금을 더 올려 받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빌라를 사들이는 수법이에요. 빌라는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거의 없어 갭투자자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갭투자자는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빌라를 사고, 빌라 가격이 오르면 집을 팔아 차익을 얻습니다.
동시진행 갭투자의 전형?
최근 뉴스에 많이 나오는 ‘동시진행’ 방식도 사연자N 님 사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동시진행은 임차인과 계약한 뒤에 곧바로 갭투자를 원하는 집주인에게 팔아넘기는 방식입니다.
사연자 N님은 당시 중개사의 제안을 회상했습니다.
“처음 임대인은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건물을 공동소유한 사람 중 하나였어요. 중개사가 빌라 내 방 몇 개의 전세가 잘 안 나가서 친구를 소개해주면 선물을 주겠다고도 하더군요.”
중개사는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대출이자나 이사비 지원 등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벌어진 뒤에는 믿었던 공인중개법인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중간에 임대인이 바뀌었는데 공인중개법인은 전혀 몰랐어요. 새로운 임대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계약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중개사도 아니고 그냥 사무직원이었어요.”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
작년 5월, 사연자N 님은 임대인에게 집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임대인도 부동산에 집을 내놨죠. 하지만 계약이 끝나는 10월을 두세 달 앞두고도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당시 전세 시세가 2억 8,000만~3억 원 초반이었는데, 임대인이 설정한 전세가는 3억 6,000만 원이었습니다. 시세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전세를 내놓은 거예요.
사연자N 님이 임대인 측에게 계속 항의하자 8월 중순에나 전세금을 3억 2,000만 원 정도로 내렸습니다. 여전히 높은 금액이었고, 결국 사연자N 님은 제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어요.
꽁꽁 얼어붙은 전세시장
임대인은 사연자N 님의 전셋집을 갭투자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전세난이 현실화돼 전셋값이 급락하자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어요.
“제 전세금이 3억 500만 원이었는데, 임대인이 새 임차인한데 보증금을 적어도 3억 600만 원을 받아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돈을 구할 데가 없으니 어떻게든 제 전세금액만큼은 받아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경제력이 없는 임대인
임대인이 돈을 안 주면 임차인이 할 수 있는 건 소송뿐입니다. 경제력이 없는 임대인은 지인 추천을 받아 무턱대고 동시진행된 빌라를 구매했다고 합니다.
돈이 없는 임대인에게서 전세금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법적 절차를 밟으려고 많이 알아봤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임대인 경제력이 전혀 없더라고요. 수입도 없고 보유한 재산도 없었습니다. 임대인은 주변에서 빌라에 투자하면 2,000~3,0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제가 사는 전셋집을 샀어요. 임대인에게 경제력이 없으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새 임차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죠.”
보증보험마저 없는 상황
사연자N 님은 전세보증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은행 직원이 “전세대출이 잘 나오는 집이니 굳이 지금 가입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신청했을 땐 임대인이 바뀌어서, 또 한번은 공시지가가 너무 낮아서 두 차례나 거절당했습니다.
만약 사연자N 님이 처음부터 전세보증보험이 안 되는 집인 걸 알았거나, 은행 직원이 제대로 설명을 해줬으면 어땠을까요? 전세계약을 다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전세보증보험이라는 울타리조차 없는 사연자N 님은 새 세입자를 구해 임대인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길 기다릴 뿐입니다.
악몽으로 남은 경험
사연자N 님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를 기다리면서 최근 경기도 분당에 있는 친구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전셋집에 정이 떨어져서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셋집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매일 악몽을 꾸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는 부동산 사람들로 같이 사는 고양이들의 스트레스도 많았고요.”
사연자N 님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조언해줄 사람이 없고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막연함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것도 무척 힘들다고 해요.
“모르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어요. 누가 말을 하든 그 사람 말을 못 믿고 날카로워진 게 힘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