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제대공황’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뉴딜 정책’은 큰 경제위기의 신호가 올 때에 종종 언급됩니다.
뉴딜은 결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예요. 한마디로 ‘정부가 돈을 왕창 써서 일자리를 만들어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죠.
하지만 큰 움직임이 실패하고 나면 후유증도 큰 법. 그러니 뉴딜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면 ‘아, 큰돈을 들여 판을 바꿔버리겠다는 거구나’, ‘그런데 잘못하면 부작용도 생길 수 있구나’ 하고 이해하시면 돼요.
뉴딜 정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인프라를 확충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 외에도
금융시장의 모럴해저드를 막는 데 큰 힘을 들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공익성이 강한 전기 및 가스 등의 공공재사업 규제 등을 감시하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도 대공황 직후 구축됐답니다. 시장윤리와 대공황이 무슨 상관이기에 그랬을까요?
일단 대공황이 대체 어떤 경제적 충격이 있었는지 알아볼게요.
세계 경제가 크게 한 번 망했을 때
때는 바야흐로 1930년대, 미국과 소련이 한창 으르렁거리던 이 시기에 세계 경제는 크게 한 번 망했습니다.
일명 대공황이라 불렀던 때였죠.
실업률이 치솟고 GDP가 역성장합니다. 물가도 오르고, 물건이 부족해지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함께 오고, 무역도 안 되고…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가다간 전 세계가 다 같이 망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죠.
미국이 대공황을 맞을 때 반대편 대장인 소련의 상황은 괜찮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소련은
대기근이 덮쳐 기록상 확인할 수 있는 사망자만 1천만 명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일자리 문제에서는 미국보다 소련이 나았습니다. 소련은 일자리가 없으면 중앙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서라도 강제지정해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이 눈을 뜨면 출근할 곳은 있었어요.
미국에 1천만 명의 실업자가 생겨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실업자 1천만 명, 느낌이 잘 안 오실 것 같으니 지금 인구 1천만 명의 서울에 빗대어 설명해볼게요.
해고된 다음 날, 아침에 가족들 얼굴 보기 미안해서 지하철 타고 나가면 혹은 버스 타고 나가면 나랑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해고된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기사님 빼고는 다 해고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과 무기력감이 만연할 겁니다.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할 때
대공황 직전 미국 증시는 그야말로 호황이었습니다. 별다른 규제도 없이 개인투자자들도 신나게 돈을 넣고, 넣는 족족 벌며 자산을 튀기고 있었죠.
뉴욕 증시가 폭락하고 대공황이 시작되자, 미국에서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와 같은 공산당 선언의 구호가 먹히기 시작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대중들의 원성은 금융업자와 자본가를 향했죠.
미국 정부에도 강력한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내민 해결과제의 내용은 대략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미국 경제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구조였습니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가져가는 게 당연했고, 정부의 간섭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공산주의 소련과는 극단적인 대비를 보였죠.
대공황이 터지고 미국 정부는 약육강식, 승자독식 구조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1천만 명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까지,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니까요. 그래서 판을 크게 뒤흔들만한 제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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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공정경쟁규약 제정★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면 장땡!’…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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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최저임금 인정
👉 사람을 고용하려면 생계 유지는 가능할 정도로 돈을 주면서 고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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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최고노동시간 제한
👉 48시간 밤샘노동 하다가 지치는 건 ‘경쟁력 없는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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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단결권 인정
👉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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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테네시강 개발
👉 강에 댐을 건설하고 발전시설도 만들어야 하니 실업자들은 다 모이세요! 정부가 월급을 드립니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을 ‘뉴딜’이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복지 확충해볼게. 시장 돌아가는 것도 좀 볼게. 우리 한 번 잘해보자. 딜? 오케이?” 이런 느낌이랄까요. 일단 새로운 사회적 계약인 건 확실했죠.
시장질서와
대공황의 상관관계는?
증시와 부동산이 동반상승하면서 신용이 창출되고(돈이 복사되고, 혹은 통화량이 늘어나고), 소비가 촉진됩니다. 소비가 늘어나니 다시 증시와 부동산이 동반상승하고… 의 반복이죠.
문제는 이 사이에 바로 ‘예·적금 해지’와 ‘영혼을 끌어모은 대출’이 끼어든다는 거예요. 개인은 물론 기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기업 중에서도 은행이 가장 문제였어요.
당시 미국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상업은행은 민간과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 은행이고, 투자은행은 기업에 직접 투자한 후 배당으로 수익을 올리는 은행입니다. 일반인의 생활금융과 거시적인 화폐생태계를 지원하는 상업은행에 비해 좀 더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상업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율이 비교적 낮은 대신 예금자보호를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은행에 돈을 맡기면 수익률이 좋은 대신 예금자보호가 어려워요. 그런데 초호황기에 이 두 가지 기능이 합쳐진 은행이 있다면 어떨까요?
상업은행 + 투자은행: 고객들의 예금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에 넣자!
주식시장이 잠시 가라앉자, 애써 모은 내 돈이 휴짓조각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예금을 찾으며 뱅크런이 일어났고, 과장 좀 보태서 거의 모든 은행에서
거의 모든 예적금에, 연금까지 휴짓조각이 됐습니다. 바야흐로 대공황이 시작된 거예요.
물론 보호 의무가 없었던 은행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 1933년, 은행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이원화하는
글라스 스티걸법이 통과됩니다. 다시 상업은행이 금융투자를 할 수 있게 되는 1999년까지 66년간 미국의 금융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법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에서야 상업은행이 직접 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투자가 다시 허용됐다고 해서 대공황이 남겨준 교훈이 사라진 건 아니죠. 미국은 시장경제에서 은행·증권이 한 번 막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면 진짜로 온 나라의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세상은 점점 금융시장의 모럴해저드를 무겁게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서브프라임모기지론(2008)이 발생하는 걸 보면, 돈을 다룬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다시 느끼게 되곤 하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는 각 분야의 모럴해저드가 심한 나라입니다. 하루이틀 된 사회풍조가 아니라서 수십 년간 ‘한국은 저신뢰사회다’라는 내용의
보도가 되어왔어요. 시장과 다른 개인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유는 바로 질서와 도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Tip.
저신뢰사회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어피티가 팁을 하나 드릴게요. 정보 취득 생활을 하시면서, 왠지 드는 생각이 ‘이건 뭐 무조건 좋대’라든가 ‘매일 뭐가 나쁘다는 소리밖에 안 하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조금 더 좋은 정보들로 일상을 구성하실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금융이나 경제 관련 정보도 마찬가지랍니다.
① 어떤 상황에서
② 어떤 요소가 좋거나 나쁘다
라는 게 명확히 제시돼있는 정보 위주로 접하시는 걸 권해드려요.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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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lim Anderson, Daniel Barth, and Dong Beom Choi, 「Reducing Moral Hazard at the Expense of Market Discipline: The Effectiveness of Double Liability before and during the Great Depression」, CATO INSTITUTE, MARCH 20, 2019 , RESEARCH BRIEFS IN ECONOMIC POLICY NO.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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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 James Mitchener* and Joseph Mason**, 「‘Blood and treasure’: exiting the Great Depression and lessons for today」, Oxford Review of Economic Policy, Volume 26, Number 3, 2010, pp. 510–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