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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서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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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영화 <파묘>의 주요 소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독자님들의 참고를 부탁드려요.

글, 남시훈


📌 필진 소개: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부교수 남시훈입니다. 연구 외에도 경제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콘텐츠도 활발히 제작하고 있어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에서 <이슈 속의 경제학>을 연재했고, 펴낸 책으로는 『현명한 선택을 위한 가장 쉬운 경제학』이 있습니다.


국제무역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본 바를 요약해 볼까요? 국가 단위로 봤을 때,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모든 참여 주체에 도움이 되지만, 기업이나 개인 단위에서 피해자를 발생시키기도 하고, 정부가 정책을 잘 세우지 못하면 산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 국가들은 여러 무역통상정책을 통해 자국 경제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죠. 이 과정에서 국가들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영화 <파묘>가 큰 성공을 거두며 새삼 사회적으로 일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 오간 바 있죠. 어떤 사람들은 일본을 적대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본에서 배울 게 많다면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정치·문화적 사안에 따라서 국민 정서 전반에 반일 정서가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들기도 해요. 그렇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떨까요? 


‘노재팬’을 기억하시나요?

2019년 여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첨단 소재와 부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비록 수출을 전면 중단한 것은 아니고,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조치였지만,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에 어려움을 일으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에 일본이 선제적으로 무역 갈등을 도발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건이었어요. 


국제무역 체제에서 국가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양질의 제품을 얻기 위해 활발하게 교류합니다. 특히 첨단 산업의 경우 수많은 부품과 소재가 필요한데, 이것을 자국에서 모두 생산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더 유리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기업도 일부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서 거의 전량 수입하기도 하는데, 이 영역에서 일본이 제재를 가한 것입니다. 


‘글로벌 밸류 체인’이라고 불리며 복잡한 국제무역 및 국제적 분업으로 이루어지는 첨단제품 생산은 국제 기업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론 한 국가가 특정 국가를 압박하는 도구로 활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마스크 대란’은 펜데믹 상황에서 다들 자국 수요를 우선시하려다 생긴, 일종의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면, 2019년의 일본의 수출 제한 움직임은 의도적이고 공격적인 위협이었어요. 


노재팬은 맹목적인 반일과 달라요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책은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이런 문제들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기존 수입처에서 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를 대비해, 다른 공급 업체를 확보하거나 자체 생산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해요. 만약 기업 자체적으로만 대비를 하기 어렵고, 이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죠. 


만약에 기업도 대비를 못 했고, 큰 피해가 예상되는데, 정부 차원에서도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면? 상대 국가의 요구를 빠르게 들어주는 것이 국가적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실례로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규제를 실시했을 때, 일본은 표면적으로 중국의 요구사항을 일단 들어주면서 중국을 달래는 한편,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과 WTO 제소 조치를 병행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한 바 있어요. 


다시 2019년 한일 국제무역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국 정부는 버텨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본에 정면 대응했습니다. 일본이 수출을 늦추는 동안, 한국 기업과 정부가 합심하여 자체 개발을 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한 결과, 첨단산업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기는 일 없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죠.


맹목적인 민족주의나 반일 정서는 분명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어요. 하지만 5년 전 당시 일본의 행태는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등 여러 정치적 문제를 두고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줌으로써 한국을 압박하려 한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한 건 당연한 일이었죠. 그로부터 촉발된 노재팬(No Japan) 운동은 무작정 일본이 싫어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의 표출이었던 거예요. 


정부가 나서서 특정 국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 위반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국민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일어나 일본 기업과 정부에 압박을 가한 노재팬 운동은, 첨예한 국제무역 갈등 상황에서 국민이 국가에 힘을 실어 준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국제경제 정책은 다른 나라 대응도 고려해야 해요


이후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한국과 일본 모두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국가 간 대립과 위협이 심했던 시기,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하고, 역으로 공격하는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죠. 한국 정부가 제시한 배상 방안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정부 및 국가 차원에서의 한일 대립은 대부분 수그러들었습니다.


사실 노재팬 운동이 시작할 때부터, 이 대립은 서로 간에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가 강했어요. 노재팬 운동은 일본의 도발과 한일 관계의 특성이라는 맥락 위에서 단기간 충분하게 제 역할을 했으며, 그 역할을 다하고 퇴장한 것입니다. 일본 방문객이 다시 늘어나고 일본과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졌다고 해서 2019년 당시의 한국 국민들의 움직임이 퇴색되거나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이처럼 국가 사이의 경제적 상호작용은 복잡합니다. 때로는 자국을 위한 정책이 다른 나라 기업에 피해를 주고, 다른 나라 정부의 항의 내지는 보복을 받기도 하고요. 전 세계 국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심하게 경쟁하던 국가 간에도 자연스럽게 다시 협력하는 관계로 뒤바뀌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관계도 그렇게 이해하면 한결 넓고 유연한 시야를 가지실 수 있을 거예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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