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하지만 당당한 프리랜서의 미래를 꿈꿔요

글, 조이


요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 저만 느끼는 거 아니죠? 최근 10년 차 콘텐츠 전문가의 창업기를 읽었는데요, 창업의 시작점에 ‘프리랜서로 돈 벌기’가 있었어요.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졌는데, 그냥 버티며 월급 받는 대신 ‘독립’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후 큰 규모의 고객이 생기면서 팀원과 함께하게 되었고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재무상황이 회복된 이후에로도 대규모 해고를 이어가고 있어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이전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더 안전한 일자리’로 향하거나, ‘더 모험적인 일자리’를 선택하는 모습이에요.


회사보다 내가 더 오래 사는 시대이니, 모험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한 분 중에 이러한 이유를 가진 경우가 많아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이다혜 님처럼요.


다혜 님은 에디터, 기획자, 작가, 활동가라는 옷을 동시에 입고 살아가는 프리랜서예요. 프리랜서의 권리보호가 본인이 소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전문성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삶에 관심 있는 분께는 오늘 인터뷰가 특히 유용할 거예요.

번아웃으로 퇴사한 후,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어요


먼저 제가 오늘에 이르게 된 여정을 소개해 드릴게요.


✔️ 온라인 홍보/마케팅 AE


방송PD를 준비하다가 홍보·마케팅 회사에 취직했어요. 당시에는 회사가 뭘 하는 곳인지,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막연하게 ‘돈 받으며 문화를 전파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세상 물정 모른 채 직장생활을 시작한 초보 직장인이었습니다. 


✔️ 프리랜서 콘텐츠 마케터


아마 대행사에서 일해 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대행사는 ‘남의 일을 대신해주는 곳’이에요. 돈 주는 고객의 요청을 실행하는 일이라,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크죠.


저는 심한 번아웃이 와서 퇴사하게 되었고, 쉬는 동안 일이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프리랜서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게 되었어요. 


✔️ 프리랜서 에디터


웹 기반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는 동안, 내가 만든 콘텐츠가 사라져 버리는 게 아쉬웠어요. 저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마케터로서의 자질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고요. 


결국, 조금 더 묵직한 콘텐츠를 물성 있는 공간에 담아내고 싶어서 프리랜서 에디터로 직무를 전환했어요. 기관이나 기업의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아카이브북 작업을 주로 하고, 인터뷰 기사도 쓰고 있어요. 로컬이나 문화예술 주제의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답니다. 


✔️ 프리랜서 문화기획자


애초에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좋은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좋은 변화의 매개가 ‘문화’라고 생각해요.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역할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 프리랜서 작가


메시지를 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 ‘문자’를 가장 좋아해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단행본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을 펴냈고, 두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은 에세이 중심으로 쓰고 있지만, 공부해서 르포르타주를 쓰는 게 목표예요. 


✔️ 프리랜서 활동가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들며 프리랜서의 삶과 노동 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한국플랫폼 프리랜서 노동공제회에서 시범운영 중인 프리랜서 권익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프리랜서 실태 조사, FGI(Focus Group Interview), 모범 계약서 개발, 프리랜서 역량 강화 교육, 커뮤니티 기획자 양성 과정 운영 등 프리랜서의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프리랜서도 하자’ 워크숍


출근길, 5분에 한 번씩 울던 때


마케팅 회사를 퇴사하게 된 것은 번아웃 때문이었어요. 출근 길에 5분에 한 번씩 울기도 했었죠. 오늘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거든요.


처음 프리랜서로 일할 때 온 번아웃은 회사 다닐 때의 번아웃보다 더 심했어요. 인지능력이 저하될 정도였으니까요. 눈을 뜨자마자 일하기 시작해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일하다가 쓰러지듯 잠들었어요. 


심리치료도 받고, 필사를 하는 등 인지능력을 다시 되돌리려고 노력했어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루틴을 만든 후, 번아웃을 탈출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퇴근 후 일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아요. 


대형 홍보회사의 입사 제안을 거절하다


2017년 대형 홍보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어요.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직장인으로 살 것인지, 프리랜서로 계속 일할 것인지를 두고 미친 듯이 고민했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당장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제가 홍보 업무를 잘 해낼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구상했던 일들을 시도조차 못하고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결국 거절했어요.


홍보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제가 한 일은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2017년 하반기 매거진을 구상하고 2018년 12월에 창간호가 나왔어요. 만약 회사에서 일했다면 제 커리어에 큰 전환점인 매거진 <프리낫프리>가 없었을 거예요. 그때 그 제안을 거절한 나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돈 대신 장어를 주겠다는 고객도 있었어요


프리랜서로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그래서 저는 일을 시작할 때 아래와 같은 조건으로 일의 진행 여부를 결정해요.

  • 정당한 대가를 주는가
  • 합리적인 일정인가
  •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한가


한번은 마케팅 해주면 장어를 주겠다던 고객도 있었어요.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일정이 급하면 결국 제 시간과 에너지,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없어요. 


커뮤니케이션의 명확성은 외주를 할 때 필수 요소예요. 명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일의 방향성을 잃게 하고 한없이 일이 늘어지게 하거든요. 


추가적으로 고려하는 두 가지도 있어요.

  • 업무의 내용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으며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가
  •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는가


저는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을 선호해요. 관심 없는 분야와 주제의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취재 과정에서 질문지를 쓰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껴졌어요. 제 성향 자체가 호기심이 없으면 잘 해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답니다. 


스스로에게 ‘망하지 않는다’고 말해 줘요


완벽주의와 불안이 심한 편이에요. 완벽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일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성격이에요. 명확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으면 시작도 못 하고요. 


그렇다보니 시작도 잘 못하고, 효율적으로 일하지도 못하면서 일하는 시간만 길어져요. 남들 보기에는 추진력이 없어 보이기도 하죠.


그때 누군가 “그래도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에요.” 하고 말해줬어요. 퀄리티에 집착할 때,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못할 것 같을 때, 저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중얼거려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용기가 생긴답니다. 


실패할 수는 있지만, 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프리랜서로 ‘내 일’을 개척해 나갈 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끗 차이가 빚어낸 신의 한 수


안정 대신 만족을 선택했어요


다혜 님은 그 어느 때보다 현재 만족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만족감의 핵심은 무엇보다 주체적으로 내 일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도 크다고 합니다.

 

물론, 수익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라서 매출을 신경 써서 챙긴다고 해요. 내가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일의 진행 상황을 정리해 공유해요 


다혜 님은 프로젝트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지,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체계화해서 공유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일을 놓치지 않고 챙길 수 있으니까요. 


한 뼘씩 꿈을 키워가고 있어요


다혜 님은 불안정 노동자와 비정형 노동자를 위한 노동복지 및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도전했어요. 다행히 합격(!!)통지를 받아 올해부터 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프리랜서를 위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서 프리랜서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볼 계획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프리낫프리를 살펴봐 주세요.


다혜 님은 60세가 넘어서도 전문가로 일하는 삶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배우, 가수, 운동선수, 드라마 작가들도 모두 프리랜서입니다. 프리랜서의 불안한 삶을 감수하되 전문성을 갈고닦아 오래오래 즐겁게 일하고 싶은 다혜 님의 꿈을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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