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이번 주 님이 알아야 할 경제 이야기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33조 원 규모의 2021년 2차 추경을 발표했습니다. 추경은 ‘추가경정예산’의 줄임말이고, 경정(更正)은 ‘바르게 고친다’라는 뜻이에요. 추가경정예산은 이미 1년 예산을 정해두었는데, 예산을 세운 뒤에 생긴 일 때문에 금액을 더 보태서 고친다는 걸 뜻하죠.
연초에 세운 계획보다 돈을 더 쓰겠다는 건데요.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 예산을 다시 고치게 된 걸까요?
코로나19로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비상사태가 만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돈을 더 써도 될까?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추경이 자주 있는 일일까,
아니면 이번에만 특별한 일일까?
뉴스에서는 추경의 액수와 용처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지고 있지만, 우리는 추경이 뭔지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지난해(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죠. 국경 없는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를 박살내면서, 각국 정부가 추경을 진행했습니다. 올해 들어 백신이 개발되긴 했지만, 백신 접종률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은 데다 백신의 효과를 낮춘다는 변이 바이러스까지 등장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추경’ 이야기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5차례의 추경을 추진한 우리나라도 올해 벌써 두 번째 추경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추경 자체가 엄청나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매년 추경을 실시합니다. 돈 쓸 일이 너무 많다 보니 1년 동안 얼마가 필요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어렵거든요. 돌발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추경을 개인의 사례로 생각해보면 약간 무섭습니다. 원래 이번 달에 쓰기로 한 예산이 있었는데 급히 돈 나갈 일이 생겨서 급히 소액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빌리거나, 신용카드를 긁거나, 적금을 깨서 추가로 당겨 쓰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라서 마음도 편치 않을 거예요.
하지만 추경을 이해할 때는 개인과 국가의 상황은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부분:
‘돈이 더 들어오면 꼭 나갈 일이 생긴다니까?’
개인의 삶에서 돌발상황은 늘 생깁니다. 보너스가 들어왔는데 반려동물이 아프다든가, 연말정산에서 생각보다 더 돌려받았는데 핸드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깨졌다든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살림 규모가 어마어마하니까, 돌발상황이 한두 건이 아니에요. 갑자기 커다란 산불이 나서 산이 모두 타버리면 산을 복구하는 데 돈을 써야 하고, 조선산업이 위태로워져서 조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이 실직하면 조선산업에 보조금을 더 써야 하고, 이번처럼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하면 소독약 단 한 품목만 해도 평소의 수백 배를 사야 하죠.
약간 다른 부분:
‘내가 더 급해! 나한테 돈을 쓰라고!’
갑자기 돈 나갈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술 먹고 들어오는 길에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나갔고, 깜빡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이때,
- 떨어뜨려서 깨진 핸드폰 액정: 나 먼저 수리받아야 해! 수리비 줘!
- 부모님에게 드릴 결혼기념일 선물: 아니? 나부터 사는 게 도리다! 나한테 돈 써!
…라며 ‘돈 나갈 곳’끼리 싸우진 않죠. 업무상 핸드폰을 많이 쓴다거나, 부모님의 압박이 크다거나 하는 고려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정권은 나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은 다릅니다. 국민 세금이니까요. 그래서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과 정당이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는 행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일명 ‘감액심사’라고 하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여당이 행정부 편을 많이 들어주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여당과 정부(특히 기획재정부)의 의견이 많이 엇갈리는 분위기네요.
보통 아래 내용을 두고 갈등을 겪습니다.
추경, 지금 필요한가?
👉 보통 매년 추경을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긴 합니다.
‘추경을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추경 횟수와 액수 등을 두고 다투죠. 하지만 모든 추경안이 실행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이 코로나19가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돈을 안 써도 된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이 국회 다수결로 지지를 받는다면 추경안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디에 할 것인가?
👉 어느 정당의 예산안이 싸움에서 이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번 2차 추경안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크게 ① 재난지원금 ② 고용노동부 일자리 지원사업입니다.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할 것인지, 아니면 상위 20%를 제외한 하위 80%에게 지급할 것인지, 아니면 그 돈으로 재난지원금 말고 코로나19로 타격을 크게 입은 대면업종 소상공인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할 것인지 여야의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또 고용노동부의 일자리 지원사업 예산 삭감을 두고서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추경은 이렇게 세부사항에서 정당별로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어떤 정당은 마스크를 사는 데 5조 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어떤 정당은 손 소독제를 사는 데 3조 원, 마스크는 1조 원어치만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거든요. (물론 이건 예시일 뿐, 실제로 마스크나 손 소독제를 사는 데 그렇게 쓰진 않습니다…)
개인과 나라가 아주 다른 부분:
‘필요한 만큼 돈을 조달해 써야 한다!’
한 해 동안 정부에 들어오는 세금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추가 예산의 규모가 세금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급한 건을 해결하는 것처럼 국가는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를 팔아서 돈을 받고 이자를 주죠.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웬만하면 원하는 만큼 대출이 다 나오지 않지만 정부는 필요한 만큼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럼 필요한 만큼 국채를 발행해서 쓸 수 있다는데 추경을 가지고 왜 말이 많냐고요? 기본적으로 추경은 안 하는 게 좋으니까요. 처음부터 예산을 잘 짜놓은 게 좋지, 계획보다 오버해서 돈 쓰는 게 왜 좋겠어요. 빚을 많이 지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건 국가도 마찬가지랍니다. 보통 이 부분을 걱정할 때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라고 해요.
그런데 또 돈 쓸 일이 생겼는데 안 쓰고 버틴다? 이건, 아플 때 대출을 받아서라도 수술을 받으면 돈이라도 다시 벌러 갈 수 있는데, 빚지기 싫다고 집에서 버티다가 큰일나는 격입니다. 따라서 돈은 필요할 때 잘 쓰는 것도 중요해요.
보통 추경안은 자연재해나 큰 사고가 나서 인프라와 사회를 복구해야 할 때 나옵니다. (최근에는 청년실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책으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경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지만요) 일부러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서 추경하자고 우기는 경우는 드물어요. 명분 없이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만 추경안의 내용이 잘못됐거나 비효율적이거나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얼른 돈이 필요한데 정치적인 싸움과 엮어서 ‘우리 정당과 딜을 하지 않으면 그 돈, 못 쓰게 해주지!’ 하며 막는 경우도 있죠.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처럼 국가의 재무기획팀 격인 기획재정부가 실무자 입장에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요.
추경안에 예민한 이유, 부채 트라우마
지난해 세계 1차 추경안을 살펴보면 코로나19 때문에 스웨덴이 274조 원을 더 쓰기로 하고, 미국은 1,200조 원을 더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11.7조 원을 추경으로 더 끌어왔어요.
또 우리나라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규모는 2020년 말 48.7%로 35개 선진국 중 24위입니다. 현재 부채 규모가 비교적 낮은 편인데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부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 경험이 있거든요.
물론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라서 다른 나라보다 충격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한 번 빚으로 망할 뻔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크답니다. 게다가 부채 증가 속도도 빠른 편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의 부채에서 진짜로 큰 문제는 정부부채보다는 가계부채입니다. 대표적인 가계부채에는 주택담보대출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개인대출이 있어요. 사람들이 주거에 느끼는 부담이 크고,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이번 추경에 정치권이 규모와 내용만 갖고 다툴 뿐, 추경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죠. 정부가 돈을 더 써야지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더 받게 할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에요.
지난 추경안 규모를 보면 굵직한 경제적 충격들을 읽을 수 있어요. 추경 규모가 10조 원을 넘는 곳(빨간색 그래프)은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촉발한 세계 금융위기, 브렉시트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2020년과 2021년의 추경 횟수와 금액은 ‘역대급’이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경제적 충격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님이 알아야 할 것
추경이 올바로 되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
- 지금 이 순간, 위기만 넘기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사들이 위기를 잘 넘기게 됩니다.
- 자연재해 복구가 제때 잘 되어 지역과 주민들의 피해가 적어집니다.
개인에 미치는 영향
- 구조조정 관련 추경일 경우, 근로자가 해고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 자연재해일 경우, 피해 복구가 빨리 되어 고생을 덜 합니다.
추경이 잘못되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
- 지금 이 순간, 위기만 넘기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사들이 망합니다.
- 자연재해 복구가 늦어져서 그 지역이 완전히 몰락하기도 합니다.
- 특히 지금처럼 방역과 관련된 문제일 때는 피해자가 상상을 초월하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개인에 미치는 영향
- 구조조정 관련 추경이 됐는데도 실업률이 증가합니다.
- 자연재해일 경우, 피해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큰 재산을 잃고 이사까지 가야겠지요.
📚 이 기사에 참고한 자료
- 추경의 정치경제학(2015.06.26) – 머니투데이
- 24조 빚낸 ‘초슈퍼추경’에 나라살림적자·국가채무비율 사상최고(2020.07.22) – 연합뉴스
- ‘5차 재난지원금’ 2차 추경, 사상 최대 33조 원 편성(2021.07.01) –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