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패널보다 중요한 건 전력망

글, 서영민 



송전탑은 희생을 요구해요 

“우리 집 앞마당 귀퉁이에 큰 탑이 세워집니다. 높이가 100m, 아파트 30층 정도 되는 송전탑이죠. 그런데, 한 개가 아니에요. 500미터 간격으로 세운대요. 우리 마을을 관통해서요. 탑과 탑 사이는 765kV 초고압 송전선으로 이어져 있고요. 비가 오면 지직지직 하는 귀신 소리가 들릴 거라더군요.


이미 땅값이 절반으로 폭락했어요. 보상은 거의 없어요. 딱 탑이 세워지는 그 부분 땅만 사준대요. 또 송전선이 지나가는 바로 그 아래 땅 일부와 바깥쪽으로 3미터만큼을 시가의 30% 정도 보상한대요. 누가 송전탑 지나가는 땅을 사요. 아무짝에도 못 쓰는데.


동네 할아버지가 몸에 불을 질렀어요. 지난 1월에 돌아가셨어요. 삼 형제 중 맏형이었죠. 세 형제 모두 송전탑 부지 근처에 땅이 있었어요. 공사에 반대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항의하러 갔다가 용역업체 직원에게 쫓겨났고, 할아버지는 그 뒤에 몸에 기름을 끼얹었어요.”

— 밀양에 거주하는 시민 인터뷰 중 일부를 각색 


2012년 밀양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입니다. 이를 취재하던 당시 저는 6년 차 기자였죠. 마을은 전쟁통이었습니다. 8월 여름, 덥기로는 둘째가라면 섭섭할 밀양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거리로 나왔어요.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송전탑 공사부지 앞에는 움막을 짓고 밤낮 없이 불침번을 섰어요. 여든 넘은 어르신들이 저희 취재 카메라를 볼 때마다 울고 사정하셨죠.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나요? 국가가 하는 일이니, 모두를 위한 일이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당시 법에는 ‘송전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지정되면 주민 동의 없이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다. 건축 등 개발행위도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어요. 실제로 한국전력(한전)은 공사를 방해한 책임을 물어 주민들에게 10억 원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고, 14명에 대해선 하루 100만 원의 가처분 신청까지 해둔 상태였어요. 공식 입장은 이랬습니다.


‘신고리 원전에서 창녕 변전소까지 90km 구간에 탑 162개를 세워야 합니다. 원전과 수도권을 잇는 핵심 전력망입니다. 밀양 22개 마을이 반대하면서 3분의 1인 52개를 못 세웠어요. 내년 말까지는 완공돼야 합니다. 내년에 신고리 3, 4호기가 상업 가동되는데 수송로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됐냐고요? 반전은 없었습니다. 주민들의 움막은 이듬해 철거됐어요. 가구별로 400만 원 정도의 추가 보상을 받았죠. 그리고 탑은 2014년에 준공됐습니다. 다만, 이후 765kV급 초고압 송전망 신규 건설은 거의 사라졌어요. 밀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죠.


전력망은 늘 반대를 불러와요 

경기도 하남시 감일지구에 동서울 변전소는 아파트촌 바로 옆에 있어요. 한전이 여기에 추가로 변환소를 들여오려고 해요. 강원도 원전과 석탄 화력 발전소 전기를 역시 수도권으로 끌어오려는 거죠. 주민들은 반대합니다. 감일지구에는 1만 세대 이상의 아파트가 있거든요.


“처음에 동두천 북경기 변전소를 만들려던 게 15년 전인데, 주민 반대로 실패했어요. 그 뒤에 용인에 전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신경기 변전소를 지으려 했는데 실패해요. 사실 그건 여주-이천-광주-양평 경계에 있는 산속에 지으려고 했는데도 안 됐어요. 4곳의 자치단체가 합심해서 반대했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동서울에 온 겁니다. 북경기, 신경기, 동서울로 빙빙 돈 거예요. 반대를 거듭한 결과, 사람이 더 많이 사는 지역으로 시설을 보내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동서울 변전소 관련 인터뷰 중 일부를 각색 


이렇게 동해안 전기를 끌어오는 초고속 송전망 사업은 10년 이상 지연됐어요. 그래도 한전은 멈출 수 없어요. 생산지 전기를 수요지로 옮겨야 하니, 송전망 계획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수요지(수도권)의 인구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더 많으면 당연히 전기는 더 많이 써요. 또 전기차를 더 타면 그만큼 전기가 더 필요하고,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면 또 전기가 더 필요하죠. 그리고 공장 전기 수요도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공장은 작고 미세한 반도체를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써야 해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곳에서 쓰는 전기가 이미 대한민국 전체 소비량의 8%에 달해요.

<그림1> 365kV


그래서 한전은 345kV급 고압 송전망을 30개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할 계획이에요. 위 그림이 그 계획의 뼈대입니다. 지방 전기를 서울로 끌어오는 시설이라는 게 보이시나요? 특히 호남 지역에 주목하세요. 이 지역과 서울을 잇는 선이 아주 많죠? 건설 계획이 이렇게 많으면 반대의 강도는 어떨까요?


한전은 주민 탓, 주민들은 정부 탓

전북 무주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지만 인구 소멸 지역이에요. 이곳에 송전탑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어요. 바로 옆 장수, 진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실도 그래요. 사실 전라북도 모든 군에 이 비대위가 있어요. 계획 중인 송전탑과 선이 전북의 모든 자치단체를 빠짐없이 지나가거든요.


이들에게 전력망은 단순한 님비(혐오시설 기피 현상) 시설이 아니에요. 지방엔 불이익만 주고, 모든 것을 서울로 끌어당기는 현실을 상징해요. 이익의 불균형한 분배가 낳은 결과물이죠.


이런 속도면 송전선이 계획대로 지어지는 건 어려워요. 지금까지 90% 이상이 지연됐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전력망 확충에 70조 원 정도를 쓸 계획인데, 실제로는 훨씬 더 들 가능성이 커요. 보상은 더 해주고 계획은 기약 없이 늦어질 테니까요. 한전은 주민 탓을, 주민들은 정부 탓을 합니다. 믿지 못하고, 지연되고, 갈등은 심각하고 비용은 눈덩이로 불어납니다. 


태양광 패널이 아니라 전력망이 최대 병목이에요 

호남 지역에 전력망이 추가로 필요한 주요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 때문이에요. 호남 지역은 태양광과 바람이 풍부한 ‘재생에너지의 보고’여서 잠재력이 높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바람개비를 설치만 하면 청정에너지 생산이 가능할 정도죠.


문제는 생산은 되는데 수요처가 없다는 점이에요. 공장도 소비자도 없어요. 지역에는 쓸 사람이 없으니 지역 바깥으로, 수요가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하죠. 그게 수도권입니다. 그런데 보낼 전력망이 없는 거예요. 그럼 생산하면 안 되죠. ‘상하기 쉬운 생선’인 전기는 만드는 즉시 써야 하고, 만약 쓰지 않으면 버려지는 동시에 망에도 부담을 주니까요.


이 때문에 정부는 호남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 신규 건설을 허가하지 않아요. 새로 발전소 지어도 전력망에 연결해 주지 않겠다, 전기 사주지도 않겠다고 하죠.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OECD 꼴찌인 건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 문제가 아닙니다. 땅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에요. ‘망이 없어서’예요. 새로운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는 분산형의 새로운 전력망을 깔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결국엔 제도로 풀어야 해요 

우리나라에는 갈등을 조율해 낼 국가 차원의 프로세스가 없어요. 법적 기반이 여전히 모순투성이죠. 구체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형식적이죠. 주민들은 화가 났고, 한전은 이도 저도 못하고 있죠.


제도로 풀어야 해요. 절차 역시 체계화되어야 하고요. 보상 금액도 현실화해야 하죠. 충분한 논의와 충분한 보상, 합의 등을 거치려면 비용과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거예요.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하고요.


권효재 COR 지식그룹 대표는 ‘우리는 전기 요금에서 송전 비용이 12% 정도밖에 안 되지만, 유럽은 25%가 넘는다’고 말해요. 우리가 당연한 비용을 내지 않아 왔다는 거죠. 그동안 너무 쉽게 누군가를 희생시켰던 거예요. 


“덴마크는 에너지 전환이 굉장히 빠른 나라로 알려졌지만, 처음 시작하고 한 10년은 사실 거의 진도가 안 나갔어요. 매주 전국적으로 토론회를 했어요. 에너지 전환을 왜 해야 하냐 전기 요금이 올라가는데 이걸 왜 올려야 되느냐, 정말 나중에 이익이 되냐? 그렇게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굉장히 원활합니다. 시민들은 적절하게 보상을 요구하고 합의도 잘 됩니다.


10년, 15년을 바라보고 지금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국민 각자가 에너지 인프라가 내 집 앞에 들어왔을 때 나한테 어떤 영향을 주고 내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가져야 해요. 교육과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느리더라도 훨씬 예측할 수 있고,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꼭 짚어야 할 것이 하나 있어요. 아무리 전력망을 건설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해도 지속 불가능한 것이 있거든요. 바로 수도권의 에너지 독식입니다. 밀양과 전북이 송전탑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이유, 그리고 동서울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본질적인 문제죠. 이 부분은 다음 연재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필진 소개: 셋째 아이 육아를 위해 잠시 휴직 중인 KBS 기자 서영민입니다. 기재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을 출입했고 산업부 팀장을 지내고, 최근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산업과 사람, 그 사이의 흐름을 기록했어요. 보고 듣고 읽어 알게 된 세상 풍경을 정리해 글로 전하는 일을 즐긴답니다.《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2023)》와 《삼성전자 시그널(2025)》을 썼습니다. 다큐 ‘전환과 성장 : 수도권 에너지독식체제의 위기’로 제1회 기후·에너지·환경 보도상을 수상했어요. 성장의 한계, 불균형, 인구소멸, 기후위기 같은 지속 불가능성에 답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그 길의 이름을 ‘지속가능성’이라 부르고 있어요.

💌<재생에너지 보고서>는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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