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는 누가 징수할까?
처음 등장했을 땐 다소 낯선 단어였던 ‘탄소국경세’는 환경, 경제 뉴스에 종종 등장하며 이제는 사회적으로 제법 익숙한 단어가 되었어요.
하지만 이 탄소국경세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자세히 알 기회는 많지 않으셨을 거예요. 오늘은 알고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탄소국경세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흥미로운 사실을 먼저 하나 말씀드리면, 탄소국경세를 만든 주체인 EU(유럽 연합)는 이 제도가 ‘탄소국경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요. 이게 세금으로 비춰지는 순간, ‘무역 장벽’이 되고, 그렇게 되면 전 세계적인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탄소국경세의 정식 명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입니다. 약자를 따 ‘CBAM’이라고도 해요. 본질은 세금과 매우 유사하지만, 이 글에서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기로 할게요.
이 세금, 아니 제도를 만든 이유는요
EU는 명실상부 전 세계에서 환경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체 중 하나입니다.
EU 국가에 소재한 공장에서 물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환경 규제들을 통과해야 해요.
석탄 연료를 사용해 온실가스를 마구마구 뿜어내며 만들어낸 전기로는 공장을 돌릴 수 없고, 물도 오염시키지 말아야 하며, 한 번 사용한 물은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 재사용해야 하죠. 생물다양성이 소실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럽의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 모든 규제가 결국은 ‘돈’입니다.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여러 비용이 발생하고, 그러다 보면 EU 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건의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태양광 판넬을 설치하는 비용, 물을 재사용하기 위한 중수도를 설치하는 비용, 굴뚝에서 공기중으로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못하도록 집진(먼지나 쓰레기를 한 곳에 모으는) 설비를 설치하는 비용까지.
이렇게 제품 생산에 드는 비용은 계속 올라가고, 이 모든 비용은 결국 제품의 가격에 반영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시장에서 유럽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요. 같은 물건이어도 유럽에서 만들면 단가가 높으니까요.
EU: 우리만 손해 볼 순 없지
그래서 EU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탄소국경조정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온실가스 줄이면서 물건 만드느라 이렇게 단가가 높아졌으니, 온실가스 많이 뿜어내면서 만들어낸 물건을 유럽에 팔려면 너희도 똑같은 경제적 비용을 치르라’는 것입니다.
EU에 속하지 않은 나라에서 만든 제품들을 EU 내에서 만들어진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이 발생시킨 탄소량만큼을 세금으로 부과하겠다는 것이죠.
나름의 명분이 있는 논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장을 돌리고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인 남미의 국가들은 순순히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지구가 이모양 이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이냐는 것이죠. 지구 평균온도의 급격한 상승이 18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과학자들이 증명해낸 사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