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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혼돈의 20세기

글, 이광수

📌 코너 소개: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며 미래 경제 대국으로 꼽히는 인도. 하지만 인도 경제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죠. 매주 수요일, 인도 전문가 이광수 교수님이 연재하는 <인도 경제 이야기>에서 그 막막함을 해결해 드릴게요.


인도 경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예요.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뒤, 1947년부터 1964년까지 17년간 인도 총리를 역임했던 인물이죠.

네루는 혼합경제 또는 국가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운영했습니다. 통계학자 마할라노비스(Prasanta Chandra Mahalanobis)와 함께 소련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철저하게 국가가 경제를 이끌어갔어요.

당시 인도에서는 기아 문제가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료 공장 등 여러 국가 기간산업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쏟았어요.

그러는 동안 네루는 개인·사기업 중심의 민간 경제는 외면했습니다. 공무원에게 모든 산업의 인허가권을 주어 경제를 이끌어가도록 만들었죠.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크던 시기

‘인도식 사회주의’ 또는 ‘네루식 사회주의’에 대한 실험이 이어지던 때, 이런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왜곡된 경제 구조, 시장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대부분의 기간산업을 국가가 개발했습니다
  • 외국으로부터 수탈당한 경험으로 외국인 투자를 배척했고, 수입대체 🏷️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의 경제 자립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제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리사욕이 없는 엘리트들을 육성했고, 이들이 국가를 이끌어가도록 했습니다

🏷️ 수입대체: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던 재화나 서비스를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의존도를 줄이는 전략

당시 인도의 경제정책 방향을 아시아-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 크게 지지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네루의 경제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네루의 집권 기간동안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3.5%, 1인당 GDP 성장률은 1.3%에 그쳤습니다. 이때 빠르게 성장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인도는 꽤 오랜 기간 저성장을 겪었어요.

그리고 1962년, 인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 찾아오게 됩니다.

인디라 간디의 등장

1962년, 인도와 중국은 히말라야 일대 국경을 두고 분쟁하던 끝에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중인전쟁’의 시작이었죠.

전쟁에서 인도는 일방적으로 패배했습니다. 인도 국민과 네루는 큰 충격을 받았고, 제3세계로부터 지지를 받던 인도는 자존심을 크게 구겼어요. 그런 와중 1964년 네루가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새로 총선이 열리자,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새 수상 후보로 오르게 됩니다. ‘신디케이트’라 불리는 인도 국민회의의 원로들이 밀어붙인 결과였죠.

잠시 신디케이트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들은 네루와 다르게 기업친화적인 성향이었습니다. 하지만 네루가 집권할 때, 그에게 밀려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정치 경험이 적은 인디라 간디를 총리 자리에 앉히면 쥐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정치 경험이 부족한 인디라를 허수아비, 꼭두각시로 조롱할 정도였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반전?

1967년에 이르러 큰 혼란이 찾아왔어요. 1년간 조용히 지내던 인디라 간디는 젊은 일부 급진주의자들과 연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급진주의자의 영향력은 무척 작았는데, 이때부터 국정이 급진 사회주의 방향으로 추진되기 시작해요.

그때까지는 인디라 간디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사회주의를 언급한 적도 없었고요. 그러던 그가 1967년에 느닷없이 당내 젊은 사회주의자들과 연대를 하면서 사회주의 계획을 결심했으니, 큰 충격이었죠.

그리고 그해 6월, 인디라 간디는 전인도국민회의위원회(AICC)를 통해 10대 프로그램을 추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엄청난 기습에 신디케이트 보스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수상의 노선에 따르기로 했었죠.

인도의 ‘잃어버린 10년’

10대 프로그램 실천 의제는 돈 많은 사람들을 억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을 억누른, 실패한 시스템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빈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인디라 간디 시기 1인당 평균 소득 증가율은 0.8%에 불과했어요.

🗞️ <‘미래G2’ 인도경제 돋보기 – 네루의 세계사와 인도 규제왕국>


“외부에 문을 닫아 걸은 이 40년 동안 외부 세계는 급변했다. 성장과 효율, 기술발전 속도면에서 인류사 최적시스템이라는 자본주의 기반의 미국, 일본과 서구는 급속한 기술발전과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웃 공산국가인 중국은 인도보다 12년 앞선 1979년 등소평식 개방, 개혁정책을 도입,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인도 경제의 버팀목이자 롤모델이었던 소련은 1989년 붕괴되었다.”

이후로도 그동안 쌓였던 관행, 기득권, 부패는 좀체 청산되지 않았고, 인도는 가난한 나라, 실패한 나라, 부패한 나라로 인식됐습니다. 그리고 1991년 국가 부도 상황에서 IMF 외환위기를 맞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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