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념일은 어떻게 보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글, 어피티

📌 코너 소개: ‘쓸모를 찾아서’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감정과 마음, 에너지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마음 사용 설명서예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달력이나 다이어리를 펼치면 매월 14일마다 다양한 기념일이 빼곡히 적혀있었어요. ‘실버데이’, ‘다이어리데이’, ‘허그데이’, ‘무비데이’ 등 유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한 기념일 투성이었지만, 그중에서도 4월 14일 ‘블랙데이’만큼은 친구들과 열심히 챙겼던 기억이 나네요. 이날은 솔로들이 검은 음식인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해요. 애인이 없는 친구들이랑 점심시간에 일부러 중국집에 찾아가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꺄르르 웃곤 했어요. 인기 TV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도 블랙데이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는지, 데이트 매칭에 실패한 출연자들이 숙소에서 혼자 짜장면을 먹는 것을 하나의 룰로 정해놓기도 했죠.

출처: 어피티


해외의 기념일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는데요.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인 ‘발렌타인데이’는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 되었고, 한 달 뒤에 여자가 남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도 생겼죠.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예요.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에요. 외식을 하거나 친구와 만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면 식당이나 상점가가 모두 문을 닫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연인들끼리 데이트하러 집 밖으로 나가는 날로 여겨지고 있어요. 종교적인 의미가 컸던 크리스마스를 상업화하기 시작한 건 1980년 대 즈음부터라고 해요.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이미지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연인들을 위한 특별한 기념일로 자리 잡았죠. 


그런데 최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국내 백화점 3사가 크리스마스에 사활을 걸기 시작하면서 부터예요.

예전에는 거리에서 들리는 캐럴 소리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느꼈다면, 요즘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미디어 파사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맘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러 백화점에 찾아가곤 하죠.

출처: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이제는 크리스마스의 성지가 백화점이 된 셈이에요.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건물 외벽을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로 장식하고 실내에는 대형 트리와 포토존을 설치해요. 최근에는 거대한 유럽풍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재현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어요. 백화점끼리 크리스마스마다 피 터지는 마케팅 경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객’이에요.


실제로 올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한 11월 1일 이후, 백화점 3사의 방문객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해요. 롯데백화점 본점은 11월 1~12일 저녁 시간대 방문객이 직전 주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부는 열흘 만에 작년보다 59%나 늘어난 2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하네요.

출처: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호텔과 레스토랑들도 이런 소비 심리를 놓치지 않죠. ‘크리스마스 스페셜 디너 29만 원’, ‘연인을 위한 100만 원대 로맨틱 호텔 룸 패키지’, ‘40만 원짜리 홀리데이 리미티드 케이크’ 등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특별 메뉴를 내놓거든요. 식사를 하고 싶으면 와인 한 병을 의무적으로 주문하게 만드는 곳도 많죠.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즐기겠냐는 생각에 지갑을 열긴 했는데, 막상 지나고 나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후회가 될 때도 있어요.


크리스마스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날에는 보상심리가 생기기 쉬워요. 오늘 만큼은 특별해야 한다거나, 남들만큼 멋진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죠. 그런데 이런 강박 때문에 특별한 그 날 하루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되기도 해요. 기념일이 다가오기 전부터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스트레스 받다가, 막상 당일이 되면 미션을 수행하듯, 하나씩 일정을 처리하느라 마음이 급해지죠.


기념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되는 건, 우리가 그 하루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게 꼭 비싸고 화려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떤 날은 친구들과 나눠 먹는 작은 과자 한 봉지로도 충분히 웃을 수 있고, 어떤 날은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왁자지껄한 파티가 특별한 날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밖을 나오지 않는 날이 더 의미 있을 수 있죠.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그 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해요.

출처: 어피티


지난 주, 크리스마스에 아무것도 안 하기 클럽을 소개한 뒤로 많은 분들이 프로젝트 진행 취지에 공감하며 반겨주셨어요. “기념일마다 할 것을 찾아 헤매느라 스트레스 받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이에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아무 계획이 없어서 우울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오히려 계획으로 세운다는 게 발상의 전환인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시기도 했죠.


중요한 그 날, 기념일을 제대로 기념하고 싶다면 진짜 내가 진정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이번 연말, 우리 모두 조금 더 마음 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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