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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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무어의 법칙은 한 사람의 예상이었을 뿐, 물리법칙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오랜시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칩워》를 쓴 크리스 밀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요.
“무어는 10년쯤 예상했는데, 무려 60년 정도 지속됐어요. 기술이나 물리학 때문이 아닙니다. 무어의 법칙을 이 끈 것은 경제학입니다. 컴퓨팅 파워에 대한 인류의 수요는 거대합니다. 누구든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달라는 이 욕망을 충족시킬수 있다면 성공적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KBS 인터뷰. 2024.2. 미국 보스턴-
저는 이 ‘경제성’이라는 말을 ‘욕망’으로 바꾸면 더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 때문에 무어의 법칙이 지속된다는 거죠. 지금은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내놓으라(유희적 욕망) 아우성이죠. 조금 지나면, 인간의 일 대부분을 GPU가 더 잘하게 될 거예요. 자본(경제적 욕망)이 원하거든요. 전쟁(정치적 욕망)도 이미 GPU에 의존해요. 최첨단 전쟁 훈련은 이미 데이터센터에서 GPU로 하거든요. 끝없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더 빠른 칩을 원합니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무어의 법칙은 이 끝없는 ‘욕망과 칩 밀도 향상의 연쇄작용’이에요.
칩 앞에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라
욕망은 실력 향상의 원동력이지만, 그 그림자도 분명합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 주인공 블랑쉬의 운명이 파멸로 향해가듯, 욕망은 때때로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칩의 세계도 그래요. 전투에서 패배한 기업의 비참한 주검이 가득하죠. 무어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을 암시하거든요.
시장경제에서 질 낮은 제품은 값이라도 싸야 팔려요. 그렇게 상위 시장과 하위 시장이 나뉘죠. 그런데 칩 산업은 다릅니다. 칩은 무어의 법칙의 지배를 받고, 그래서 ‘더 잘 만드는 회사가 더 싸게’ 만들어요. 2등은 더 느린데 더 비싼 칩을 만드는 상황이 펼쳐지는 거예요. 기술이 모든 경쟁력을 결정한단 점에서 일반적 시장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요.
2등 이하 기업은 잔혹한 운명 앞에 설 수 밖에 없어요. 1등이 ‘돈을 더 벌겠다’며 독한 마음을 먹으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1등이 자신의 생산단가 수준에서 시장가격(P)를 형성하면, 나머지 기업들은 다 적자를 내야 하죠. 1등을 제외한 기업들은 팔수록 손해가 나요. 우리는 이걸 치킨게임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이 지배하는 시장의 비극이에요.
피 비린내 진동하는 D램 잔혹사
이 전형적인 사례가 D램 산업의 역사에요. 이기는 기업만 살아남는, 끝나지 않는 쳇바퀴, 무한 루프였어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사였고요. 모리스 창의 저서 《TSMC 반도체 제국》의 내용을 참고해 설명해 드릴게요.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은 첫 치킨게임을 벌였어요. 원래 D램을 만드는 건 미국기업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도전장을 내민 일본 기업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더니 급기야 미국 기업들을 몰아냈어요.
시장은 과열되고 마침내 잔혹사가 시작됩니다. 가격이 내려가요.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기업(1등)만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요. 결국 미국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떠안은 채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아요.
여기서 끝이라면 무한루프라고 묘사하지 않았겠죠. 2차 치킨게임이 90년대 초에 반복돼요. 이번에는 일본 기업들이 코너에 몰려요. 승자는 한국 기업들, 그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였어요.
삼성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부의 금융·세제 지원이나 지정학적 상황, 운처럼 수많은 요소를 들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업가 정신’을 들고 싶어요.
삼성을 창업한 故 이병철 회장은 막대한 적자를 감내하며 반도체 라인을 세웠죠. 임직원들은 반대했어요. 천문학적인 적자가 쌓인다며 너무 빠른 투자를 우려했어요. ‘이러다 그룹 전체가 망한다’는 우려도 나왔죠.
그러나 이 회장은 멈추지 않았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거죠. 회장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1987년 8월에 3라인 착공을 밀어붙였어요. 임원들이 착공식을 자꾸 미루자, 자신이 직접 참석할 테니 ‘당장 내일’ 착공하라고 독촉해 실제로 실행에 옮겼죠.
비가 내린 이날 삼성전자는 1메가 D램 3라인을 착공해요.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한 시점이었어요. 이 회장은 석 달 뒤인 11월,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1988년, 기적처럼 변화가 일어나요. 우선 경쟁구도가 변했어요. 84년부터 계속된 미·일 치킨게임의 결과 미국 업체들이 퇴출당했어요. 경쟁자가 줄어든 거죠. 그러자 D램 사이클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가격이 회복, 반등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엔 지정학적 행운도 따랐어요. 일본 기업들 때문에 시장에서 쫓겨난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거세게 항의한 거예요. ‘일본이 반칙 쓰는데 계속 보고만 있을 거냐’고 하자 결국 정부가 나섰죠. 지금 미·중 갈등과 비슷합니다.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1985)’이라는 불평등 조약 체결을 일본에 강요했고, ‘플라자 합의(1986)’를 맺어서 일본 돈의 가치를 끌어올려버리죠. 그 결과 미국 시장에서 일본 칩을 파는 데 정치적 제약이 생겼어요. 또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올라가요. 그러면 일본에서 생산된 칩의 국제 가격이 비싸집니다. 한국 칩은 계속 싼데 말이죠.
‘적의 적은 나의 친구’… 1993년, 삼성이 우뚝서다
그게 삼성의 터닝포인트로 이어진 거예요. 그동안의 누적 적자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엄청난 흑자! 그걸 기반으로 열심히 기술개발을 계속해요. 그리하여 1992년, 세계 최초의 64M D램을 내놓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기술로 1위가 된 거예요. 그리고 1993년, 삼성은 D램 점유율에서 사상 처음으로 세계 1위를 해내죠.
그러니 한국의 성공에는 인내하는 기업가 정신이 있었고, 정부의 지원도 있었으며, 미국의 우호적인 정책도 있었던 거예요. 사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이 ‘반칙’을 썼다면, 한국도 반칙을 썼기는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하지만 대접이 달랐죠. ‘적(일본)의 적은 나(미국)의 친구’라는 생각이 미국의 머릿속에 가득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에요. 이대로는 치킨게임이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무어의 법칙은 영원하니까요. 그런데 이 치킨게임이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면 사라지고 말아요.
어떻게 된 일인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알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