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 70년대 겪었던 석유 파동을 예로 설명해 드렸어요. 함께 살펴보았다시피 물가가 오르는 것이 서민 경제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럼 물가가 내리는 것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무조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죠.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듯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은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고, 각각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가 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인플레이션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물론 ‘좋은 디플레이션’은 존재합니다. 기술 혁신이 일어나거나 국제무역이 증가하면서 보다 저렴한 가격에 성능이 좋은 제품을 수입해 올 수 있게 되어 물건의 가격이 낮아졌을 때가 이에 해당하죠.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충격과 공포를 초래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그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옆 나라 일본에서 현실이 되어 ‘잃어버린 30년’을 선사했죠. 오늘은 디플레이션이 왜 무서운지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디플레이션의 개념을 한 번 더 알려주세요!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내린다는 의미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한다는 의미도 돼요. 부채는 화폐 표시 자산, 쉽게 말해 현금이죠. 우리는 보통 대출을 받을 때 화폐로 받습니다. 그런데 디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상승하면? 부채의 실질 가치, 즉 실질 부담이 증가하게 되겠죠?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볼게요. 1억 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집을 살 때 대출 5천만 원을 받았어요. 그럼 내 돈 5천만 원과 빚 5천만 원이 들어가 있으니 내 자산은 자본과 부채 비율 1:1로 구성되겠죠. 그런데 갑자기 집값이 급등해서 2억 원이 되었다고 해볼게요. 집값이 올라도 부채는 그대로 5천만 원입니다. 그럼 내 돈 1억 5천만 원과 부채 5천만 원이 들어가 있는 셈이니 자본과 부채의 비율이 3:1이 됩니다. 부채는 그대로인데, 그 부담이 줄어든 것이 느껴지시나요?
반대로 갑니다. 집값이 5천만 원으로 하락했어요. 집을 판다면 부채 5천만 원을 변제하고 받을 수 있는 내 돈은 0원입니다. 똑같은 부채 5천만 원이라고 해도 그 부담이 훨씬 커지지 않았나요? 이렇듯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자산 가격, 혹은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화폐 표시 자산인 부채의 실질적인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돼요.
실제로 인플레이션파와 디플레이션파가 싸운 적도 있다면서요?
그래서 부채를 많이 갖고 있는 채무자들은 부채의 실질 가치가 줄어드는 인플레이션을 선호하고,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은 부채의 실질 가치가 높아지는 디플레이션을 선호하게 돼요. 이런 구도는 과거 미국의 사례를 통해 보다 생생하고 흥미롭게 이해하실 수 있어요.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화폐 발행을 두고 ‘금본위 화폐제’를 지지하는 세력과 ‘금은 복본위’ 화폐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죠. 금본위 화폐제는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금만큼 달러화를 찍자는 것이고요, 금은 복본위 화폐제는 말 그대로 화폐 발행에 있어 복수의 근거, 즉 금과 은을 모두 중심에 두고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을 담보로 달러를 찍자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럼 어느 쪽에서 화폐의 공급이 보다 많이 늘어나게 될까요? 당연히 금과 은을 함께 담보로 돈을 찍을 수 있는 금은 복본위 화폐제가 보다 많은 화폐 공급을 가능케 하겠죠.
당시 복본위 화폐제는 미국 서부에서 선호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였을까요? 당시 서부에는 은광이 있었고, 상공인과 농부가 많았어요. 우선 은광을 소유한 사람들은 당연히 은화를 담보로 달러를 찍는 것을 선호했겠죠. 한편 공장을 짓기 위해, 혹은 농사를 짓기 위해 빚을 낸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 역시 복본위를 지지했어요. 화폐 공급이 많아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부채의 실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반면 미국 동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동부에는 금광 소유자와 금융인들이 많았습니다. 화폐량이 많아져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 원치 않는 이들은 금본위 화폐제를 지지했어요. 이들은 너무 많은 화폐의 공급이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낳아, 국가 경제 전체를 불안으로 몰고 갈 것임을 주장하면서 금은 복본위파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금본위 화폐제가 승리했는데요, 그럼 미국의 서민들은 화폐 발행이 늘지 않아 화폐 가치가 상승, 즉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으로 큰 고통을 겪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면서 금의 절대량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상당한 화폐의 발행이 가능했죠. 금본위 화폐제를 시행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로 예상됐던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새로운 금의 유입으로 인해 완화가 된 거예요.
당시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나봐요
혹시 <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를 기억하시나요? 캔자스에 사는 소녀 도로시가 강풍을 만나 어느 마을에 불시착하게 되고, 이후 다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떠난 여정을 그린 이야기죠. 노란색 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에메랄드 성에 사는 동부의 마녀를 만나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얘길 듣고 오른 여행길에서 도로시는 허수아비, 양철통, 그리고 겁 많은 사자를 만나 함께 여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로시는 미국의 일반적 서민을 의미해요. 허수아비는 미국의 농민들, 양철통은 상공인들, 마지막으로 겁 많은 사자는 능력은 없으나 그래도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계속해서 선거에 출마한 브라이언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들이 동부로 가기 위해 걷는 노란색 길은 금본위 화폐제를, 이들이 도달하는 에메랄드 성은 달러화를 말합니다.(녹색이죠?)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도로시가 은으로 된 구두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이때 은으로 된 구두가 은유하는 대상이 바로 은본위 화폐제예요. 오즈의 마법사는 ‘금은 복본위 화폐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쓰인 1800년대 후반의 정치 풍자 소설입니다. 당시 논의가 얼마나 첨예하고도 중요한 문제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죠.
일본 ‘버블’과 ‘잃어버린 30년’도 여기서 시작됐다면서요?
과거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화폐의 가치가 오르는 디플레이션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부채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았어요. 이제 최근의 이야기를 해 봐야죠. 앞서 말씀드렸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설명해 드릴 차례예요. 이번 칼럼에서는 그 배경을 먼저 간략히 훑어볼게요.
1970년대 후반 미국은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었죠. 이에 당시 미국 중앙은행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고 2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미국 금리가 워낙에 높은 수준을 유지하자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였는데요, 달러 강세로 미국 기업들의 수출은 크게 어려워졌어요.
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 당시 서독과 일본이었는데요, 당시 일본은 달러 당 350엔 수준의 매우 저렴한(?) 엔화를 기반으로 수출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죠.
자국의 수출 산업이 피폐해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던 미국은 85년 9월 서독과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시 서독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의 파격적인 절상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플라자 합의’예요. 이후 달러-엔 환율은 달러 당 120엔 수준으로 빠르게 하락했습니다. 엔화 가치가 거의 3배 가까이 올랐다는 의미죠. 일본은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어요.
이에 일본은 수출의 성장 둔화를 벌충하기 위해 금리 인하와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쓰게 됩니다. 네, 내수 부양으로 방향을 선회한 거예요. 이후부터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낮은 금리와 규제 완화가 맞물려 그 유명한 일본의 거대한 부동산 버블을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버블이 엄청난 부채의 증가를 동반한 채 일어났다는 거예요. 자산 가격 버블과 부채의 증가… 이런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앞서 공부한 대로 화폐 표시 자산인 부채의 부담은 크게 늘어나게 되겠죠. 다음 연재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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