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달러를 빌려올 수 있어요
한미관세협상에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85조 원)를 전액 현금으로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우리나라는 ‘무제한 한미 통화스왑’을 요청하며 맞불을 놓았어요. 통화스왑은 두 나라 중앙은행이 서로 자국 통화를 맡기고 그만큼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거래를 말해요. 우리나라와 미국이 무제한 통화스왑을 맺으면 한국은행은 한도 없이 원화를 맡기고 그만큼의 달러를 빌려올 수 있어요. 물론 만기가 되면 조금의 이자와 함께 달러를 돌려주고 맡겼던 원화를 다시 받아오게 돼요.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왑은 시장이 불안하거나 금융위기가 걱정될 때, 국제 결제가 가능한 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율을 안정시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커요.
사실상 달러 무제한 공급 요구예요
우리나라가 ‘무제한 한미통화스왑’ 체결을 요구한 이유는 ‘우리 외환보유고의 84%가 넘는 3500억 달러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안에 모두 유출될 경우, 환율이 흔들릴 테니 그만큼 달러를 무제한으로 공급해 달라’라는 거예요. 5500억 달러의 투자금 지급을 약속한 일본은 이미 미국과 통화스왑을 맺고 있어요.
외환보유고가 흔들리면 외환위기가 와요
외환보유고에는 크게 세 가지 쓰임이 있어요. 먼저 해외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입할 때, 또 국가 채무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에 쓰여요. 에너지와 국가 채무 상환은 기축통화인 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어요.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 이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올라요. 세 번째는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달러를 시장에 공급해 우리나라 돈의 가치를 방어하는 비상자금 용도예요.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이면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우리나라에 투기적 공격을 가할 수 있어요.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돈을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거죠. 그러면 외환보유액 부족 탓에 오르던 환율이 더 가파르게 오르게 돼요. 이때 헤지펀드는 원화 환율 상승에 베팅하는 선물·옵션을 대량 구매해 이익을 얻고, 국가는 화폐가치를 방어하지 못하면 파산하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태국 금융 시스템 붕괴가 바로 이렇게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