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눌프》 – 헤르만 헤세
《크눌프》는 제가 20대에 만난 책이에요. 제가 거쳐 온 경로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상처받던 때였죠. 안정적인 직업과 가정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크눌프를 읽으며, 제 삶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품 해설에 실린 헤세의 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142p
크눌프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요. 다른 삶을 배척하거나 경멸하지 않죠. 저는 그 시선을 저 자신에게도 건네고 싶었어요. 남들과 다른 경로를 지나왔다는 이유로 제 삶을 평가하지 않으면서요.
📚《노베첸토》 – 알레산드로 바리코
배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도 땅을 밟지 않은 피아니스트 노베첸토는 건반에 관해 이렇게 말해요.
“건반은 88개이고 당신은 무한해. 난 이런 게 좋아.” 76p
건반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은 무한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 문장을 삶에 겹쳐서 읽어보았어요. 살아가는 세계에 경계가 있어도, 그 안에서 느끼고 사랑하고 만들어내는 것까지 작아지는 건 아닐 거예요. 더 멀리 나아갔는지, 더 많은 것을 이뤘는지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고 부르기로 한다” 133p
이 시집에서는 슬픔을 이렇게 헤아려요. 그때부터 슬픔이 한 그루씩 바라볼 수 있는 나무처럼 느껴졌어요. 눈앞에 많은 나무가 있으니, 헤아리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죠.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울지 않았는데도 언덕을 내려왔을 때 충분히 운 것 같은 느낌을 이야기해요. 이 시집이 독자에게도 그런 언덕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요. 책을 읽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마음이 머물다 내려올 자리는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어떤 경험은 그냥 내 삶의 일부여도 돼요
3권의 책을 읽으며 경험에서 배움을 찾아내는 것 외에도 그 시간을 대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생각했어요. 판단하기 전에 바라보고, 이해되지 않는 마음 곁에 머무는 일이요.
“그래서 무엇을 배웠지?”라는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어요.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 질문에도 당장 답할 수 없다면 잠시 두어도 되고요. 어떤 경험은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내 삶에 남아 있어도 괜찮을 거예요. 사랑했던 마음도, 견뎌보려 애썼던 날들도 그 시간 안에 있으니까요.
저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읽고 싶어요. 계속, 문학을 읽듯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한 시절을 서둘러 교훈으로 바꾸지 않으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