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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1929 ④ 현대 경제가 대공황의 발명품이라고요?

글, 정인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전은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미국이 세계의 리더도 아니었고, 정부가 경제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국내총생산(GDP)라는 개념도 없었고요. 현대 경제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는데요. 그 사정을 자세히 알아볼게요. 

미국은 한발 물러나 있었어요

‘진주만 공격’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미국은 참전하지 않고 무기만 팔고 있다가,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에 공습을 하는 바람에 미국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맥락이에요.

요즘 시각으로 보면 좀 이상합니다. 현재의 미국은 여기저기 안 가는 데가 없고 여기저기서 안 부르는 데가 없는 나라인데,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세계대전과 거리를 두려고 했던 거잖아요.

당시 세계 경제 리더는 영국이었어요

영국의 파운드화가 세계 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였어요. 영국은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많이 수입하고 파운드화로 지불해서 기축통화 자리를 지켰어요. 또한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환율 체제도 안전하게 유지했답니다. 

미국은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었습니다. 공산품뿐 아니라 농산물도 수출해서 거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었어요. 

사실 기축통화국이 되면 무역에서 흑자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기축통화는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남의 물건을 사고 기축통화를 지불해야 내 돈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미국은 기축통화국이 재미없다고 생각했죠. 

미국이 리더가 된 건 2차 세계대전 후예요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 미국 경제에는 세계무역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는데 반대로 세계 경제에는 미국과의 무역이 엄청 중요했어요. 미국은 계속 자본을 수출하고, 다른 나라와 무역하면서 세계 경제에 입지를 다져나갔어요.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영향력을 제대로 드러낸 건 ‘마셜플랜’이었어요. 마셜플랜은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이 유럽을 대규모로 지원한 계획이에요. 이때 미국은 유럽에 엄청난 돈을 퍼부었어요. 

당시 정부는 경제 관여에 소극적이었어요

대공황 이전, 미국의 제31대 대통령인 후버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했습니다. 기업과 은행은 정부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기업을 경영했어요. 

기업이 줄도산할 때 오히려 반기는 경제학자도 있었어요. 경제학에 수학을 처음 도입한 어빙 피셔는 경기침체 때 일어나는 경쟁력 없는 기업의 청산은 시장의 자기 정화 기능이라고 주장했었죠.

당시 정부의 우선순위는 내수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해고당하고 소비가 얼어붙는데도 금리를 올렸어요.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고 금을 적정량 보유하는 데 집중해,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어요. 

정부: 이제부터는 제때 대응할게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1933년에 나왔습니다. 정부의 변화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정책인데요. 정부가 직접적으로 경제에 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경제위기가 닥쳐오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사람들에게 공공일자리를 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도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복지를 마련했어요. 현재 복지국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들도 실제로 사회보장을 시작한 건 대공황 이후예요.

근로자 임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야 소비가 살아난다는 사실, 그러니까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소화된다는 케인스의 유효수요론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거시경제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에요. GDP라는 개념도 이즈음 나왔어요. 뉴딜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였죠.

보호무역과 식민지 경영의 부작용이 나타났어요

이렇게 미국과 유럽은 열심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현대 경제의 토대가 마련되었고요. 그렇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각국 정부가 보호무역과 식민지 경영으로 경제를 살려보고자 했던 거예요. 

당시 유럽은 식민지에서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켜 물건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식민지를 시장으로 삼아, 그렇게 만든 물건을 비싸게 팔 수도 있었죠. 

게다가 보호무역까지 하면서 식민지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사이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커집니다. 독일과 일본도 이 모습을 보고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우리나라가 등장합니다. 기존 유럽 국가의 식민지를 더 빼앗으려고 시작한 전쟁이 바로 1939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고요. 대공황 시작으로부터 딱 10년 후예요. 

이 글을 쓰는 데 참고한 자료

  • 아키모토 에이치. (1995).일본인이 쓴 미국 경제의 역사. 합동국제문화센터
  • 이헌대. (1999). 세계대공황의 원인과 경제정책. 경제사학.
  • 아이오와 주정부 홈페이지, Great Depression and the Dust Bowl

어피티의 코멘트

  • 정인: 대공황이 1929년~1933년 사이라고 하지만, 1929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공부하는 것이 좋아요. 사건들이 연속적이거든요. 참, 이 시기 영국의 경제적 타격이 그나마 적었던 이유는 금본위제를 빠르게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1931년까지 프랑스의 경제도 비교적 건실했던 것은 정부가 국내투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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